미국 미네소타주 노블레스 카운티에 위치한 워싱턴에서 중미 불법이민자 학생들이 등교를 위해 통학버스에 올라타고 있다. 워싱턴포스트 캡처

베트남전 참전용사인 71세 스쿨버스 운전기사 돈 브링크는 더 이상 학생들에게 아침 인사를 건네지 않는다. 영어를 할 줄 모르는 아이들이 태반이기 때문이다. 중미 국가에서 넘어온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스페인어로 재잘거리고, 브링크는 이 광경이 탐탁지 않다. 그는 “올 해 또 처음 보는 아이들이 잔뜩 늘었다”고 구시렁거렸다.

미국 미네소타주 노블레스 카운티에 위치한 소도시 워싱턴(Worthington)이 중미 출신 미성년 불법이민자들의 폭발적 증가로 극심한 갈등을 겪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22일(현지시간) 전했다. 백인 농부들은 더 이상 불법이민자를 위해 세금을 부담할 수 없다며 이들 유입에 제동을 걸고 나섰고, 이민자를 옹호하는 쪽에선 인종차별적이라는 비판을 쏟아냈다.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는 미국내 이민자들과 내국인들의 갈등 상황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보호자 없는 미성년 불법이민자들은 2013년 가을 무렵부터 미국 내 각 지역으로 보내졌다. 이민 재판으로 법적 지위를 인정받을 때까지 친척집에서 기본적인 교육과 생활을 보장받도록 하기 위함이다. 총 27만여명 가운데 대다수는 로스앤젤레스 등 대도시로 보내졌지만, 소도시로 보내진 인원도 상당했다. 미 난민재정착사무소(ORR) 통계에 따르면 인구 1만3,000명의 워싱턴에는 지난 6년간 400명이 넘는 미성년 불법이민자들이 들어왔고, 그 결과 노블레스 카운티의 인구당 미성년 이민자 비율은 전국에서 두 번째로 높은 수준까지 치솟았다.

가장 큰 변화를 겪은 곳은 학교다. 이민자 학생의 유입으로 워싱턴의 학령인구는 2013년 대비 33% 이상 증가, 창고를 교실로 개조해도 공간이 부족한 지경에 이르렀다. 특히 문제가 된 건 교사와 학생 간 의사소통이었다. 영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영어학습학생(ELLㆍEnglish Language Learners) 비율이 3명 중 1명 꼴에 이르면서 각 학교는 스페인어 능통 교사 모시기에 나서야 했다. 워싱턴과 사정이 비슷한 오클라호마주 텍사스 카운티의 한 공립학교 관계자는 “자기 이름도 쓸 줄 모르고, 연필 한 번 쥐어보지 못한 학생들이 매일 밀려 들어온다”고 WP에 토로했다.

무엇보다 미성년자인 이들에게는 ‘납세의 의무’가 없다는 점이 갈등의 씨앗이 됐다. 워싱턴의 세수는 여전히 백인 농부들에게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이들은 이민자 정착을 돕기 위해 주머니 열기를 꺼려하고 있다고 WP는 설명했다. 이 지역 학교의 예산 확충을 묻는 주민투표를 2013년부터 5차례나 실시했지만 모두 부결된 것이 대표적 사례다. 다만 마지막 투표에서 표차는 17표까지 줄었다고 한다.

이민자 유입에 반기를 든 쪽은 홍수 피해와 미중 무역갈등 심화로 이미 재정부담이 한계에 도달한 상태라고 호소한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 목회 활동을 하는 짐 칼라한 신부는 WP에 “어떤 이유를 내세우건 기저에는 이민자 혐오와 인종차별이 깔려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공화당 출신 제프 존슨 전 의원이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말로 이민자 문제 논의 자체를 차단해선 안 된다”고 재반박하는 등 논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워싱턴은 올 11월 6번째 주민투표를 앞두고 있다.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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