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소시효 만료 자백 유도 애먹어… 전문가 “가족 등 주변인물 활용해야”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실마리가 발생 33년만에 풀리기 시작했지만 수감중인 핵심 용의자 이춘재(56)는 여전히 입을 열지 않고 있다. 경찰은 이춘재의 입을 열기 위해 2009년 강호순 사건에 활약했던 베테랑 프로파일러 투입을 결정했다. 부산교도소에서 안양교도소로 이감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23일 경찰에 따르면 경기남부경찰청은 57명 규모로 꾸린 화성연쇄살인사건 재수사 수사본부에 프로파일러를 대거 포함시켜 이춘재 접견에 투입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18일 이후 세 차례 이상 진행된 이춘재 접견조사에 동행, 이춘재의 반응 등을 면밀하게 관찰했다. 이 프로파일러 중에는 2009년 10명을 숨지게 한 연쇄살인범 강호순(50)으로부터 자백을 이끌어낸 A(40) 경위도 포함되어 있다. 강호순은 2009년 1월 경기 군포시에서 실종된 여대생 살해 혐의로 체포됐으나, 추가 수사를 통해 2006~2008년 7명의 여대생을 살해한 사실 등이 드러났다.
수사팀이 봉착한 가장 큰 문제는 이춘재가 경찰 조사를 거부해도 특별히 불이익을 받을 일이 없다는 점이다. 1991년에 끝난 연쇄살인사건은 모두 공소시효가 만료된 상태로, 경찰이 DNA 감식 결과 등을 들이밀어 압박을 가해도 이춘재로선 다시 법정에 설 일이 없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지금 이춘재의 입장으로선 경찰을 만나 자백할 유인이 없다”며 “공소시효가 만료된 이상 경찰도 조급해하지 않고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찰은 다른 사건 DNA 감식 결과를 기다리며 이춘재와 꾸준히 접촉, 신뢰관계를 형성하는데 우선 집중하고 있다. 앞서 배용주 경기남부경찰청장도 이춘재와의 “라포르(rapportㆍ신뢰관계) 형성”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꼽았다. 그래서 A경위 투입은 주목된다. A경위는 2009년 강호순 수사 당시 투입된 지 이틀만에 범행에 대한 자백을 이끌어냈다. 당시 A경위는 강호순과 친밀함을 형성하기 위해 “식사는 하셨어요?”, “어디 불편한 데는 없으세요?” 같은 일상적인 질문에서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대화를 풀어나갔다.
전문가들은 시간을 들여야 할 작업으로 보고 있다. 성급하게 압박해 들어가기보다는 인간적인 측면에 호소해야 한다는 얘기다. 프로파일러 출신 배상훈 서울디지털대 교수는 “이춘재에 대해 단편적으로 알려진 사실은 있어도 구체적으로 어떤 환경에서 자랐고 결혼 생활은 어땠는지 등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진 바가 적다”며 “경찰은 이춘재 가족 등 주변 인물들의 협조를 구하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도 “공소시효가 만료됐음에도 세 차례나 경찰 조사에 응했다는 점에 착안해 피해자에 대한 사죄 등 인간적 면에 호소하는 것이 좋다”며 “이춘재의 가족 접견 때 경찰이 동행하는 방법도 검토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춘재를 수사본부와 가까운 안양교도소로 이감할 것을 검토하는 것도 이런 점까지 감안한 것이다.
한편, 경찰은 화성연쇄살인사건 당시 이춘재를 수사선상에 놓고도 빠뜨렸다는 보도(본보 9월21일자 4면 ‘수사망에 올랐던 이춘재, 신발 사이즈 달라 용의선상서 빠져’)에 대해 당시 경찰이 왜 그런 실수를 저질렀는지 확인 중이다. 동시에 당시 이 사건을 다뤘던 전직 경찰관 가운데 일부를 수사본부에 참여시키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수원=홍인택 기자 heute128@hankookilbo.com
수원=임명수 기자 sol@hankookilbo.com
수원=손성원 기자 sohns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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