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동안 이스라엘의 강경 행보를 주도해 온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재집권 가도에 더욱더 짙은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아랍계 정당들이 네타냐후 총리의 경쟁자 베니 간츠 청백당 대표 지지를 전격 선언하면서 차기 정부 구성의 주도권을 잃게 됐다. 청백당과의 연립정부가 성사되지 않는 한 네타냐후 시대는 종언을 맞을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아랍계 정당 연합 ‘조인트 리스트’를 대표하는 아이만 오데는 22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기고한 글에서 “네타냐후는 증오와 공포, 불평등과 분열을 야기해 왔다. 그가 다시 총리 임기를 시작하는 일이 없도록 간츠 대표를 지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오데는 총리 후보 지명권을 쥔 레우벤 리블린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도 네타냐후를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
앞서 17일 치러진 총선에서 전체 120석 중 청백당은 33석, 네타냐후의 리쿠드당은 31석, 조인트 리스트는 13석을 차지했다. 이스라엘 언론들은 “아랍계 지지로 간츠를 선호하는 중도좌파 계열은 57석, 우파 유대계 정당을 합한 네타냐후 지지는 55석이 된다”고 분석했다. 두 정당 모두 과반(61석)에는 모자라 연정 구성은 여전히 쉽지 않지만 간츠가 차기 정부를 주도적으로 꾸릴 기반은 마련된 셈이다.
아랍계의 간츠 지지 선언은 사건이라 할 만하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정당들이 특정 총리 후보를 추천한 것부터 1992년 당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 ‘오슬로 평화협정’을 추진한 이츠하크 라빈 총리 이후 27년 만이다. 그간 소수 아랍계는 연정에 참여할 경우 정치적으로 이용당할 것을 우려, 철저히 불관여 정책을 유지해 왔다. 간츠 자체도 아랍계가 선호하는 인물이 아니다. 그는 2014년 군 참모총장으로서 50일 동안 계속된 가자지구 작전을 지휘하면서 유혈사태를 초래한 장본인이다. 그럼에도 간츠의 손을 들어 준 것은 네타냐후를 향한 불신의 골이 그만큼 깊다는 뜻이다. 오데는 “간츠의 정책이 좋아서가 아니라 네타냐후 축출을 위한 것”이라고 못 박았다.
네타냐후 입장에선 청백당과 연정 외에 권력을 유지할 카드가 별로 없어 보인다. 그는 최근 간츠에게 청백당과의 연정을 제안했으나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그러자 네타냐후는 “테러리스트를 칭송하는 소수정부에 의지할 것이냐, 아니면 광범위한 연정이 구성되느냐 두 가지 옵션이 있다”며 아랍계의 간츠 지지를 비난했다.
연정의 향방은 25일 총리 후보자를 발표할 리블린 대통령의 선택에 달려 있다. 일단 리블린 대통령은 “청백당과 리쿠드당 둘 다 정부에 참여하면 좋겠다”며 또다시 연정 구성에 실패해 3차 선거를 치르는 최악의 상황만은 막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8석을 획득한 극우 이스라엘 베이테누당 아비그도르 리에베르만 대표의 ‘킹메이커’로서의 존재감도 살아 있다. 그는 아랍계를 배제한 대연정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NYT는 “누가 먼저 연정 구성권을 갖든 위험 부담은 있다”면서 “오히려 경쟁 상대가 첫 번째 연정 구성에 실패한 뒤 잠재적 파트너를 설득하는 편이 쉬울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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