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삶과 문화] 부정 편향과 사실에 충실하기

입력
2019.09.24 04:40
31면
0 0
사람들은 긍정적인 정보보다 부정적인 정보를 더 빨리, 더 오래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전문용어로는 ‘부정 편향’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사람들은 긍정적인 정보보다 부정적인 정보를 더 빨리, 더 오래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전문용어로는 ‘부정 편향’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올해는 추석이 여느 때보다 빨랐다. 직원들과 함께 부처 사무실 인근에 있는 사회복지 시설을 방문했다.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힘든 분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사무실에서 20분쯤 좁은 시골길을 달려 도착했다. 원래 역 근처 교통이 편리한 곳에 있었으나 지역 주민의 반대로 결국은 인적이 드문 곳으로 옮겨갔다고 한다. 아담하지만 깔끔하고 환한 분위기였다. 직원들은 점심 준비로 부산했지만 표정은 밝았다. 나와 직원들은 전을 부치기로 했다. 가스 불을 제 때에 조절하지 못해 타버린 전들은 우리가 먹기로 했다. 돕겠다고 해놓고 타버린 전을 내놓을 염치는 없지 않은가. 그런데 생각보다 맛있다. 음식의 질이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나는 사회복지 시설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사회복지 시설은 음침하고, 직원들은 생기가 없으며, 음식은 맛이 없을 거라는 편견이다. 그 편견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바쁘다는 핑계로 사회복지 시설을 자주 방문하지는 못하니 직접적인 경험에서 온 것은 아니다. 십중팔구 언론에서 접한 정보를 가지고 내 머릿속에서 재구성한 것일 게다. 뉴스는 긍정적인 내용보다는 부정적인 내용을 많이 담는다. 보통 사람들의 일상보다는 특이한 사람들의 비정상적인 사건이 주목을 받는다. 자기 일에 충실한 공무원 보다는 부패한 공무원, 열심히 연구하고 가르치는 교수보다 갑질하는 교수에 대한 보도가 더 빈번한 이유다. 식품이나 의약품의 관리가 수만 번 잘되다가도 한 번 잘못되면 질타의 대상이 된다. 우리나라 4명 중 1명이 앓아본 경험이 있을 만큼 정신질환은 흔하지만 뉴스에서는 강남역 살인사건, PC방 살인사건 등 사회적으로 심각한 범죄와 연결 짓는다. 이런저런 부정적인 보도에 노출되다 보면 어느덧 사실과 동떨어진 편견이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된다.

사람들은 긍정적인 정보보다 부정적인 정보를 더 빨리, 더 오래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전문용어로는 ‘부정 편향’이다. 장애인 특수학교, 소방서, 노인 복지 시설 등은 주민들이 건립을 반대하는 기피 시설이다. 왠지 그런 시설이 들어오면 집값이 떨어지고 범죄가 늘어나고 주거환경이 나빠질 것이라는 근거 없는 인식 때문이다. 달리 생각하면 나의 부모, 나와 주민들이 함께 활용할 시설인데도 말이다. 부정 편향의 탓이다.

이러한 부정 본능을 통계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자 의사인 한스 로슬링은 ‘팩트풀니스: 우리가 세상을 오해하는 10가지 이유와 세상이 생각보다 괜찮은 이유’라는 저서에서 세상을 오해하는 10 가지 이유 중 하나로 본다. 부정 본능의 예로 세상은 점점 좋아질까 나빠질까라는 질문에 30개 국가에서 모두 50% 이상의 응답자들이 점점 나빠진다고 답했다. 씁쓸하게도 한국은 터키, 벨기에, 멕시코 다음으로 부정적인 답변이 많이 나온 국가이다.

그런데 정말 세상은 점점 나빠지고 있을까. 저자는 아니라고 답변한다. 오히려 지난 수십 년 동안 세상은 많이 진보해왔다고 본다. 예방접종률, 극빈층 비율, 교육 수준, 기대 수명 등 몇 가지 지표들은 훨씬 나아졌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방 접종률에 대한 질문에 13%, 극빈층 비율엔 7%만이 정답을 맞추었다. 나머지는 정답보다 더 부정적인 답변을 골랐다. 이 정도면 무지도 거의 체계적인 수준이다.

저자는 사실에 근거한 세계관을 갖자고 주장한다. 책 제목과 같이 사실에 충실함(팩트풀니스)으로써 여러 가지 편견을 극복하고 더 나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자는 희망의 메시지를 보내고자 한다. 사실을 충실하게 알아내어 부정 편향이든 다른 고정관념이든 인지하고 극복하려는 개인의 노력이 절실하다는 뜻이다. 오늘, 나부터 노력을 시작해야겠다.

백혜진 식품의약품안전처 소비자위해예방국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