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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팬클럽에게만 지지를 받는 조국

입력
2019.09.24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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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 중앙광장에서 재학생 등 참석자들이 조국 법무부 장관 사퇴와 조 장관 딸의 입학 취소를 촉구하는 네 번째 촛불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19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 중앙광장에서 재학생 등 참석자들이 조국 법무부 장관 사퇴와 조 장관 딸의 입학 취소를 촉구하는 네 번째 촛불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위키백과에 의하면 팬(Fan)은 어떤 특정한 스포츠나 연예인, 음악, 영화 등을 열광적으로 사랑하면서 자신의 노력ㆍ시간ㆍ돈을 소비하는 사람을 말한다. 팬들은 팬클럽이라는 집단을 만들어 활동하는데 팬클럽은 일종의 브랜드 커뮤니티로서 특정 브랜드에 대해 강력한 충성도를 지닌다. 팬클럽은 자기가 사랑하는 브랜드에 대한 지출에 저항하지 않으며 부가상품도 기꺼이 소비한다.

전통적으로 스포츠 비즈니스는 팬클럽을 기반으로 한다. 대부분의 프로 스포츠의 경우 연고지역을 기반으로 한 강력한 팬클럽이 형성되어 있다. 유명 선수가 되면 자연스럽게 팬클럽이 생기고 등에 선수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이 판매된 액수가 그 선수의 인기척도가 되기도 한다.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에서도 팬클럽은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가 배출한 세계적인 아이돌 BTS의 성공을 논할 때면 반드시 BTS 팬클럽 ‘아미’의 역할이 거론된다. 아이돌 팬클럽의 열성적 응원을 감안한다면 1세대 아이돌들이 공연할 때마다 서로 다른 색깔의 풍선을 들고 우비를 입은 팬클럽 간에 충돌이 있었다는 에피소드도 전혀 낯설지 않다. 아이돌 팬클럽은 일종의 커뮤니티이자 응원집단으로서 응원소비를 통해 아이돌의 사업적 성공을 지원한다. 연예인이 아닌 콘텐츠에 대한 팬클럽이 있는 경우도 흔하다. 세계적인 유아용 애니메이션 뽀로로는 콘텐츠 자체로 수익을 올리기 보다는 강력한 팬클럽을 기반으로 브랜드를 판매하여 부가 수익을 창출한다.

좋은 콘텐츠로 팬을 모아서 팬클럽을 만들고 팬클럽의 지지를 일종의 감정자본으로 활용하여 자사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를 제고하고 매출을 증대하는 전략을 가장 잘 구사하는 대표적 기업이 디즈니다. D23는 2009년에 만들어진 디즈니의 공식 팬클럽인데 디즈니 설립연도인 1923년을 기념해 D23이라는 명칭을 갖게 됐다고 한다. D23는 격년으로 D23 엑스포를 개최하는데 필자가 참관했던 올해 D23 엑스포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하루 입장료가 80달러에 달하는 3일짜리 행사에 수많은 디즈니 팬들이 디즈니 캐릭터 복장을 입고 모여서 퍼레이드나 복장 경진대회에 참가하고 다양한 전시를 돌아보며 디즈니 관련 물품을 엄청나게 구입하는 장면은 현실 세계가 아닌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세상에는 그냥 팬클럽과 디즈니 팬클럽 단 두 종류의 팬클럽이 있다는 표현이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우리나라 정치권에도 스포츠 선수나 연예인 못지않은 팬클럽을 보유한 정치인이 존재한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노빠’라고 불릴 정도로 매우 강력한 팬클럽인 ‘노사모’의 전폭적인 응원을 받았고 문재인 대통령도 팬클럽을 기반으로 한 정치를 펼치고 있다. 그런데 스포츠나 엔터테인먼트 영역과는 달리 정치에 팬클럽 문화가 적용되면 예기치 않은 폐해가 나타나게 된다. 우선 아무리 정치가 서로 다른 세력 간의 권력 다툼이라고 해도 팬클럽 위주의 정치는 당파나 진영의 논리를 우선시 하는 분열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또 팬클럽만을 염두에 둔 정치활동은 중요한 공익적 가치를 외면하고 사익추구로 흐를 가능성이 농후해 진다.

범 야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조국 교수를 법무부 장관에 임명한 대통령이나 숱한 의혹을 제대로 해명하지 못한 채 장관에 취임한 조국 장관 공히 자신들을 지지해 온 팬클럽의 주문에는 충실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스포츠 선수나 연예인과 달리 법무부 장관은 한 나라의 정의를 수호하는 매우 중요한 공적 존재이기 때문에 두 사람의 결정은 팬클럽에게만 지지를 받을 뿐 국민 다수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제라도 문 대통령이나 조국 장관은 자신들의 팬클럽의 응원 넘어 들리는 더 큰 반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해임이나 사퇴의 결단을 내리기 바란다.

김성철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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