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스 뉴턴 푸트(Eunice Newton Foote, 1819.7.17~1888.9.30)는 1850년대에 이산화탄소 온실효과를 실험을 통해 최초로 규명한 여성 과학자다. 불과 10년 전까지 세상은 그게 존 틴달(John Tyndall)의 공이라 알았다. 틴달은 이산화탄소의 자외선 열 효과를 규명한 논문을 1859년 자신이 회원으로 활동하던 저명 과학저널(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에 발표했다. 하지만 유니스 푸트가 태양열과 이산화탄소의 관련성을 실험적으로 규명한 논문을 과학저널 ‘American Journal of Arts and Science’에 발표한 건 틴달보다 3년 앞선 1856년이었다. 한 석유관련 지질학자(Ray Sorenson)가 2010년 그 사실을 우연히 발견해 이듬해 1월 발표했다. 푸트는 여성이어서 인정받지 못하고, 인맥이 없어 잊힌 과학자 중 한 명이었다.
유니스 푸트는 1819년 코네티컷주에서 태어나 뉴욕 ‘트로이 여성신학교’를 졸업했다. 당시 신학대 재학생들은 인근 과학대학에서 기초화학과 생물학 강좌를 수강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거기서 과학 이론과 기초적인 실험 기법을 익혔다.
당시는 지질학과 고생물학계가 고대의 기후와 식생이 현대와 달랐다는 걸 알아낸 직후였다. 푸트의 실험도 그런 사실에 착안한 거였다. 그는 수은 온도계가 꽂힌 여러 개의 유리 실린더와 펌프 등을 이용, 대기 중의 수증기와 여러 종의 기체가 태양광에 일정 시간 노출될 경우 온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실험했고, 이산화탄소가 들어 있는 용기의 온도가 가장 높이 오르고, 가장 느리게 식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의 논문 ‘태양광의 열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1856년 8월 미국과학진흥회(AAAS) 총회에서, 그의 동료였던 스미스소니언협회 조지프 헨리(Joseph Henry)에 의해 대신 발표했고, 이듬해 초 푸트의 이름으로 저널에 수록됐다. 3년 뒤 나온 틴달의 논문에는 유니스 푸트도 조지프 헨리도 언급되지 않았다. 그가 몰랐을 수도 있고, 알면서 의도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물론 유니스 푸트는 틴달의 논문을 알았을 것이고, 이후 틴달이 누린 학자적 영광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푸트는 미국 최초 여성인권대회인 1848년 ‘세네카폴스 여성대회’의 주최자 엘리자베스 캐디 스탠턴의 친구로서 행사 준비 과정에서부터 가담했고, 대회 여성해방선언문인 ‘감정 선언(Declaration of Sentments)’에도 당연히 서명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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