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열대림이 두 달째 불타고 있다. 비상사태가 선포된 수마트라섬과 칼리만탄(보르네오)섬 6개주(州)에서 벌써 서울시 넓이의 5배가 넘는 33만ha가량을 태웠다. 매일 약 200만톤의 탄소를 배출해, 온난화에 따른 기후 변화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휴교, 비행기 연착 및 결항, 호흡기감염은 일상이 됐다. 이번 화재는 2015년 이후 최악이다.
수도 자카르타에서 비행기로 1시간 남짓 거리인 수마트라섬 중부의 잠비주 일대는 초미세먼지(PM2.5) 농도가 755㎍/㎥(우리나라 경보 기준은 150㎍/㎥)까지 치솟는 등 18, 19일 이틀 연속 세계 최악의 대기 질을 기록됐다. 가히 ‘보이지 않은 살인자들’이 포위한 ‘질식 도시’라 할 만하다.
18일 낮 잠비 시내에서 약 50㎞ 지점의 화재 현장인 쿰페 지역에 가까워질수록 하늘은 누렇게 변해갔다. 연무를 애써 뚫으려는 태양은 핏빛이었다. 화마가 휩쓸고 간 현장에서 500m 떨어진 푸딩마을 아이들은 하늘이 뿌옇든, 냄새가 나든 개의치 않고 강에서 멱을 감고 있었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폐허였다. 열대림이 모두 타버린 산야는 온통 흑색이었다. 잿빛과 누런빛이 드리운 하늘과 지평선까지 검게 변한 땅은 지구 종말을 다룬 영화 속 장면처럼 기괴했다. 하늘에선 하얀 재가 첫눈처럼 날리다 머리에 내려앉았다. 수북이 쌓인 검은 잿더미 위를 걷자 눈밭을 걸을 때처럼 발이 푹푹 꺼졌다.
여전히 연기가 나고 있는 곳도 있었다. 얕은 물에 식물과 동물 및 곤충 사체가 덜 분해된 채로 수천~수만 년 유기물이 쌓인 이탄지(泥炭地)라는 땅의 특성 탓이다. 그래서 연무엔 나무 태우는 냄새뿐 아니라 기름 냄새와 뭔가 부패한 악취가 함께 실려있다. 지상의 불을 다 끄더라도 강한 가연성의 탄소가 저장된 지면 아래엔 여전히 불이 살아있는 경우가 많다. 소방관들이 갑자기 살아난 불길에 갇히거나 완전 진화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다.
다행히 22일 예보에 따르면 23일 오후부터 잠비 일대에 비가 내린다.
수마트라 잠비(인도네시아)=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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