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호 태풍 ‘링링’이 남기고 간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제17호 태풍 ‘타파’가 또 다시 제주도와 남부 지방을 중심으로 큰 피해를 남겼다. 타파는 지난해 10월 초 제주도와 남부 지방을 덮쳤던 ‘콩레이’와 2016년 10월 초 역시 같은 지역을 할퀸 ‘차바’와 비슷한 경로로 움직였는데 강풍은 물론 폭우까지 더해져 태풍이 가까이 접근하기 전부터 피해를 낳았다.
필리핀 동쪽 바다에서 북상했던 링링이 발생 후 나흘이 지난 뒤 제주도 옆을 지났던 반면 일본 오키나와 남쪽 바다에서 생겨난 타파는 사흘 만에 제주도 동쪽 바다를 지났다. 타파가 세력을 키운 기간은 짧았지만 강도와 규모는 최대강풍 속도가 역대 5위였던 링링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제주도를 스칠 무렵 링링의 강풍반경은 390㎞, 최대풍속은 초속 43m(시속 155㎞)에 달했는데 22일 오후 3시 제주 서귀포 남동쪽 110㎞ 인근 바다를 지날 당시 타파의 강풍반경은 350㎞, 최대풍속은 초속 35m(시속 126㎞)였다.
단순히 수치만 비교하면 타파가 링링보다 더 약해 보일 수도 있지만 한반도에 미친 영향은 결코 작지 않았다. 무엇보다 내륙에 더 가까이 이동했기 때문이다. 윤기한 기상청 통보관은 “링링은 서해 먼바다를 따라 이동함에 따라 강도에 비해 우리나라에 준 영향이 작았지만 타파는 내륙 가까이 이동해 직접적인 피해를 남겼다”고 설명했다.
타파가 링링보다 더 위력적이었던 건 강풍과 폭우를 동반했기 때문이다. 링링은 강한 바람에 비해 내륙 지방 강수량이 적은 ‘마른 태풍’이었지만, 타파는 제주도 인근을 지날 무렵 이미 최대 668.5㎜의 집중호우를 쏟아냈고 지리산에도 257.5㎜의 비를 뿌렸다. 윤 통보관은 “주로 태풍의 북쪽과 북서쪽에 비가 많이 내리는데 링링의 경우 그 위치가 서해상이었고 타파는 제주도, 남부 지역과 동해안이 그 위치에 해당해 비가 더 많이 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태풍이 한반도에 가까이 오기도 전부터 일부 중부 지방을 제외한 전국에 비가 내린 건 태풍이 몰고 온 덥고 습한 공기가 한반도 상공에 있는 찬 공기와 부딪히면서 비구름을 형성해서다. 고온 다습한 공기와 선선한 공기가 부딪히며 태풍 앞 부분에서 비가 먼저 내린 뒤 태풍이 몰고 온 비구름이 뒤를 이어 비를 뿌려 비가 내리는 기간이 길어진 것이다.
‘가을장마’를 일으키는 정체전선이 일본에 머물면서 남부 지방에 수증기를 공급한 것도 강수량이 늘어난 이유가 됐다. 문일주 제주대 태풍연구센터장은 “이번 태풍은 필리핀 근처의 계절풍인 남서풍과 북태평양 고기압의 열대 지역에서 불어오는 남동풍이 대규모 순환을 하며 만들어낸 것이어서 중심부보다 주변부에 비구름이 많이 생겼다”며 “태풍 전면부에 발달한 비구름에 정체전선의 영향이 더해져 태풍 접근 이전부터 많은 양의 비가 내렸다”고 설명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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