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산 불매운동이 생활패턴도 바꾸어… 원산지 확인 등 ‘개념 소비’ 급증
“일본제품 불매운동을 넘어 국산품을 찾는 게 생활화 됐어요.”
직장인 박선영(가명∙38)씨는 한때 일본의 생활용품 업체 ‘무인양품’의 마니아였다. 퇴근한 뒤 근처 무인양품 매장을 거의 매일 찾았던 ‘단골’이었다. 물건을 사지 않더라도 볼펜이나 신발부터 식기, 침대, 이불 등 다양한 생활용품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의류나 속옷 제품도 만족스러워 계절이 바뀔 때마다 인터넷을 통해 신제품을 검색할 정도였다.
그러나 박씨는 지난 7월부터 무인양품 매장에 발길을 뚝 끊었다. 일본이 보복성 수출 규제 조치를 내린 이후 일본제품 불매운동에 참여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제는 무인양품 대신 대체 국산 브랜드로 떠오른 ‘자주’ 매장의 단골이 됐다. 자주는 신세계그룹 계열 신세계인터내셔날이 운영하는 브랜드다. 박씨는 “화장품과 먹거리도 일본산인지 아닌지, 제조사가 어디인지를 따지게 됐다”며 “대단한 애국은 아니지만 이왕이면 국산 제품을 찾게 된다”고 말했다.
일본 맥주를 즐겼던 직장인 서종석(32)씨도 불매운동에 참여하면서 일본산 먹거리는 입에 대지 않는다. ‘4캔에 1만원’하던 편의점 행사 제품에서 일본 맥주가 제외된 이유도 있지만, 그간 생각 없이 소비하던 생활 패턴을 고쳐보기로 했다. 서씨는 “이번 기회에 이른바 ‘개념 소비’라는 말을 되새기게 됐다”며 “국산품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됐고, 더불어 동물실험을 거치지 않은 제품이나 공정무역 제품에도 눈이 가더라”고 말했다.
어느덧 100일을 앞둔 일본제품 불매운동은 이렇게 소비자들의 실생활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이제는 불매운동에 동참하고 있다고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소비 패턴이 바뀐 사람들이 늘고 있다. 제품의 원산지나 제조사 등을 꼼꼼하게 따져보는 개념 있는 소비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것이다.
3개월이 지났지만 일본제품 불매운동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최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tbs의 의뢰로 전국 성인 50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일본제품 불매운동 참여실태 조사에서 ‘참여하고 있다’는 응답자 65.7%였다. 3명 중 2명은 불매운동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어서 여전히 열기가 식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국내 소비자들의 불매운동 여파로 업계 판도가 바뀌었다. 국내 수입맥주 시장을 장악했던 일본 맥주의 추락이 대표적이다. 지난 16일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일본 맥주 수입액은 22만3,000달러(약 2억6,000만원)로 전체 수입 맥주 중 13위를 기록했다. 2009년 이후 10년간 줄곧 수입 맥주 순위 1위 자리를 지키던 일본 맥주의 아성이 무너진 것이다. 이는 작년 8월 수입액인 756만6,000달러(약 89억5,000만원)와 비교하면 무려 97%나 감소한 수치다.
대신 국산품 소비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맥주의 경우 하이트진로의 ‘테라’는 지난 7,8월 여름 성수기에만 300만 상자(10ℓ 기준) 이상 팔아 2억병(330㎖ 기준) 판매를 돌파했다. 국내 수제맥주 브랜드 ‘생활맥주’도 불매운동이 시작된 7월 한달 매출이 전달 대비 7% 상승했다. 맥주가 가장 잘 팔리는 성수기에 국산 맥주가 소비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셈이다.
생활용품 및 의류, 식기 등을 판매하는 ‘자주’도 무인양품과 유니클로의 대체 브랜드로 떠오르면서 지난해와 다른 분위기다. 27일 자주에 따르면 올해 7~9월(현재)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7% 증가했다. 특히 팬티나 브라 등 언더웨어의 8~9월 매출은 작년 동기와 비교해 25%나 신장했다.
자주 관계자는 “자주가 유니클로나 무인양품 언더웨어의 대체제로 언급되면서 실제 매출 증가로 이어진 것 같다”며 “출시 한 달도 안 된 파자마 신제품은 조기 품절이 예상돼 1만5,000장 추가 생산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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