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곳, 모습은 완전히 변했지만
아직도 기억하는 그날
화성연쇄살인사건의 5번째 피해자가 등하굣길로 이용하다 변을 당했던 경기 화성시 태안읍 황계동의 둑과 논 사이에는 자동차 도로가 뚫렸다. 오지혜 기자

“소 꼴로 팔았던 볏짚더미를 파헤쳤더니 그 안에서 여자 다리가 나왔다고요.”

1987년 당시 경기 화성시 태안읍 황계1리 이장이었던 최재만(83)씨는 32년이 지난 지금도 그해 1월 10일을 잊지 못한다. 버스에서 내려 귀가하다 살해당한 홍모(당시 18세)양의 시신은 두 손이 묶인 채 발견됐다. 최악의 장기미제인 이른바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다섯 번째 희생자였다.

최씨는 그날 일을 떠올리는 듯 한숨을 쉬었다. “어제 있었던 일도 잘 까먹는데 그 일만은 잊을 수가 없다. 참 어렵게 살면서 자식을 키우던 집안인데, 안타까움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날을 기억하는 건 황계동에서 만난 당시 홍양의 이웃들도 마찬가지였다. 김모(74)씨는 “80년대에는 지금처럼 제대로 된 길이 나 있지 않아 둑이나 기찻길을 오가며 생활했다”며 “그 애도 거기로 다니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5대째 이 마을에서 살고 있다는 김모(79)씨는 “그 일 이후로 마을 분위기가 계속 흉흉했다”면서 “나도 그 애가 다니던 길로 장을 보려 다녔는데, 이후에는 같은 길을 다신 갈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지금은 폐가가 된 화성연쇄살인사건의 5번째 희생자 홍양의 집을 한 주민이 가리키고 있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 이춘재(56)의 존재가 드러난 지난 19일 살인의 현장이었던 화성시 일대가 들썩였다. 삼삼오오 모이면 당시 일을 얘기했고, 혹시 또 동네 이미지가 안 좋아질지 모른다는 우려를 내비쳤다. 특히 증거물에서 검출된 DNA와 이씨의 DNA가 일치한 5ㆍ7ㆍ9차 사건 현장 근처는 크게 술렁였다.

1988년 9월 7일 7차 사건이 벌어진 화성시 팔탄면 가재리의 한 마을회관에서도 이날 하루 종일 연쇄살인에 대한 얘기가 오갔다. 희생자 안모(당시 52세)씨가 농수로에서 발견된 7차 사건은 2003년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을 통해 세간에 잘 알려졌다.

희생자 안씨와 비슷한 또래인 황재순(85)씨는 사건의 전말을 세밀하게 기억했다. 황씨는 “그때 안씨가 수원에 있는 아들 집에 다녀온다며 갔다가 오는 길에 변을 당했다”며 “안씨의 친지가 숨진 안씨를 발견했던 것도 생생히 기억난다”고 말했다.

오래 거주한 주민들의 선명한 기억과는 달리 사건 현장은 그때와 완전히 달라졌다. 5차 사건 피해자 홍양이 등하굣길로 이용했다는 둑과 개울, 논밭 길에는 도로가 뚫렸다. 홍양이 살았던 집은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가 된 지 10년이 훌쩍 넘었다.

화성연쇄살인사건 7번째 피해자의 시신이 발견된 곳은 당시 논밭이었지만 지금은 포장도로로 바뀌었다.

7차 사건 희생자 안씨 시신이 발견된 곳은 불빛 하나 찾기 어려웠다는 30년 전과는 다르게 수많은 조명이 설치됐다. 안씨가 변을 당했던 마을 초입에도 건물들이 들어섰다. 고덕규(45)씨는 “이곳이 원래 논두렁이 있던 곳인데 지금은 거의 다 사라졌다”며 “전과 달리 가로등도 많아 밤에 와도 환하다”고 말했다.

1990년 11월 15일 13세에 불과했던 김모양이 시신으로 발견된 9차 사건 현장인 화성시 병점동은 아파트단지로 변모해 이전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원주민들도 대부분 떠났다. 김모(60)씨는 “집이 몇 채 없었는데 90년대 초 주공아파트가 들어오면서 본격적으로 개발이 됐다”며 “어디가 사건 현장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도 없다”고 전했다.

사건 현장의 주민들은 대부분 “범인을 잡을 수 있게 돼 다행”이라고 했지만 일부는 공소시효가 만료된 이후 용의자가 특정된 것을 아쉬워했다. 가재리에서 40년 가까이 살았다는 신모(73)씨는 “그 세월 동안 못 잡다 이제 와서 무엇을 할 수 있겠나 싶어 안타깝다”고 했다.

글ㆍ사진=오지혜 기자 5g@hankookilbo.com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사회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