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공청회도 없이 왕산광장을 산동광장으로 변경한데 항의
경북 구미시가 독립운동가 왕산 허위 선생을 기리는 왕산광장의 명칭을 산동광장으로 변경해 논란을 빚고 있는 가운데 선생의 친손자 허경성(93) 옹이 20일 구미시청을 찾아 항의 시위를 펼쳤다. 허 옹의 부인 이창숙(88) 여사는 장세용 구미시장과 논쟁을 벌이다 고혈압과 호흡곤란으로 병원에 실려가기도 했다.
허 옹과 이 여사는 이날 구미시청을 찾아 공원명칭 변경 결정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부부는 “왕산광장과 왕산루로 이름을 결정한 것은 시민들에게 왕산 일가의 독립운동 행적을 널리 홍보하기 위한 것이 본 취지”라며 “공원의 이름을 지우고 14인 동상을 구석진 곳에 둔다는 것은 당초 취지를 무색케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광복회 대의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허 옹은 고령으로 인해 거동이 힘들지만, 이날 시위를 위해 자신이 살고 있는 대구 북구 침산동에서 먼 발걸음을 했다.
구미시 관계자는 “명칭 변경과 관련해서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문제가 있다”며 “말씀하신 부분들을 충분히 시장에게 보고하도록 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보였다
장세용 구미시장과 면담에서는 서로 언성을 높인 것으로 알려졌다. 장 시장은 “저의 조상도 독립운동을 했지만 현재 산소가 어딨는지도 모른다”며 “이렇게 시청까지 찾아와 시위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부부와 시장 사이에 20여분 간 고성이 오갔고, 이창숙 여사의 혈압이 200까지 올라 병원으로 실려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 여사는 현재 구미의 한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전병택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장은 “왕산 선생은 지역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110년만에 지난해 처음 공식적인 추모식을 가졌을 정도로 홀대받고 무시당했다”며 “지역정서를 이유로 광장과 누각의 이름을 바꿨다면 그 지역정서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또 “독립운동가의 후손에게 언성을 높인 일만으로도 역사의식이 희박한 것이라 볼 수 밖에 없다”며 “지금이라도 원안인 왕산광장과 왕산루로 되돌려 독립운동 정신을 제대로 기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족문제연구소와 구미참여연대 등 지역 시민단체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3,000명 서명운동을 펼쳐 구미시에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한편 한국수자원공사는 최근 구미시 산동면 국가4산업단지 확장단지 내 3만㎡ 규모 56억원을 들여 10호 근린공원을 조성했다. 당초 수자원공사와 구미시는 공원의 이름을 물빛공원으로, 공원 내 8,000㎡ 규모 광장을 ‘왕산광장’으로 누각의 이름을 ‘왕산루’이라 명명하고 왕산가문이 배출한 독립운동가 14인의 동상을 전시하기로 했지만 인근 지역 주민들의 민원을 이유로 산동광장과 산동루로 이름을 재차 변경했다.
하지만 왕산광장과 왕산루가 주민공청회 등을 거쳐 확정된 것에 비해 재변경 과정에서는 이 같은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논란을 빚고 있다.
1855년 경북 선산군 구미면 임은리(현재 구미시 임은동)에서 태어난 허위 선생은 13도 창의군 참모장을 맡아 1908년 일본 통감부 공격을 위해 선발대 300명을 이끌고 서울진공작전을 지휘했다. 항일의병활동 중 일본군에 붙잡혀 1908년 9월27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했다. 14명이나 독립운동에 참가한 왕산 가문은 안중근 가문과 함께 일제시대 5대 항일 가문이다.
구미=김재현기자 k-jeah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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