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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영토분쟁] <52>말레이시아-브루나이 ‘림방’ 놓고 10년 만에 다시 격돌

입력
2019.09.20 20:0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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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나이와 말레이시아의 영토 분쟁이 진행 중인 림방 지구. 그래픽=강준구 기자
브루나이와 말레이시아의 영토 분쟁이 진행 중인 림방 지구. 그래픽=강준구 기자

보르네오 섬은 동남아시아 말레이 제도 한가운데 위치한,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이다. 해변과 열대 우림으로 유명한 이 섬에 브루나이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가 공존하고 있다. 섬 북서부에 위치한 브루나이는 인구 42만여 명, 면적 5,765㎢(경기도의 약 2분의 1)의 작은 나라다. 영토는 말레이시아 사라왁주(州) 림방 지대를 사이에 두고 동서로 양분되어 있는데, 그 배경에 브루나이와 말레이시아 간의 조용한 영토분쟁이 있다.

림방 지대는 원래 브루나이 왕국의 땅이었다. 1841년 브루나이 술탄(왕)은 해적을 진압한 공로로 영국인 제임스 브룩에게 사라왁 지역 영토를 하사했는데, 이후 사라왁 왕국을 세운 브룩 일가가 영토를 확장해가면서 브루나이의 영토는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술탄은 쌀과 야자수가 풍부했던 림방 지대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려 했지만 결국 실패하면서 브루나이는 두 개의 땅으로 쪼개진다.

이곳 일대는 1888년 영국의 보호령이 된다. 독립 시점은 제 각각이었다. 림방 지대를 포함한 사라왁은 1963년 독립하면서 말라야 연방, 사바 등과 함께 말레이시아 설립에 동참한다. 브루나이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때는 20여년 후인 1984년. 브루나이가 줄곧 영유권을 주장해온 림방 지대는 이미 말레이시아의 일부가 되고 난 후였다.

다만 브루나이는 문화적으로 긴밀하던 말레이시아와의 갈등을 키우지 않았다. 브루나이 영토 내에서 발견된 유전(油田) 덕분에 림방의 상대적 가치도 줄었다. 양국 정상은 왕실 결혼식 참석 등 비공식 방문뿐 아니라 연례 정상회담 등을 통해 우호협력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던 양국의 ‘조용한’ 분쟁이 다시 떠오른 것은 양국 모두가 맞닿아 있던 남중국해 때문이었다.

2003년 말레이시아 국영 석유회사 페트로나스(Petronas)가 미국 석유기업인 머피 사에 남중국해 해양광구 2곳에 대한 사업권을 넘겼다. 이때 브루나이가 이 곳이 자신들의 배타적 경제수역(EEZ) 내에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양국 함포가 모여들며 긴장이 고조되자 결국 양국은 작업을 중단하고 해결책을 모색하기로 한다.

이때 양국은 영토 분쟁도 대화 테이블에 올렸다. 긴 대화 끝에 2009년 3월 16일, 정상이 만나 합의에 서명을 함으로써 분쟁은 사실상 종결된다. 해양광구는 브루나이 소유로 하되 페트로나스에 지분을 배분하고 말레이시아 선박에 항해 권한을 인정한 것이다. 국경에 대해서는 브루나이와 사라왁이 19~20세기 사이 맺었던 국경 협정 중 5개를 다시 채택하기로 합의했다. 림방 지대는 기존 질서에서 큰 이탈 없이 말레이시아 영토로 간주되었다. 5개 협정으로도 획정되지 않은 나머지 구역에 대해서는 공동 조사를 진행해 매듭 짓기로도 결정했다.

다만 이후 엇갈린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브루나이가 몇 년 후 “합의 당시 림방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고 발표한 것이다. 결국 양국은 림방 일대도 공동 조사를 진행해 국경을 획정하기로 다시 합의했다. 이 공동 조사는 지금도 진행 중에 있으며, 여전히 공식ㆍ비공식 교류를 이어오며 양국은 조용히 갈등을 풀어가고 있다.

이미령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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