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고령화 시대의 대안으로 정부가 정년 연장을 유도하는 ‘계속고용제도’ 추진을 발표한 가운데, 자칫 이 제도가 현존하는 노동시장 격차를 더 강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미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가 심각한데 정년 연장의 혜택이 대기업 정규직에만 쏠릴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따라서 호봉제 중심의 임금구조 개편과 동시에 도입하거나 일손이 부족한 중소기업 중심으로 도입하는 등 정년 연장 제도의 세심한 설계를 주문한다.
2017년 법정정년(60세)이 민간기업까지 의무화됐지만 공무원과 공공부문ㆍ대기업 정규직 근로자와 달리, 고용 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 등은 정년까지 근무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19일 “노동시장 이중 구조가 현존하는 상황에서 정년 연장을 전 부문에 도입할 경우, 결국 일부 ‘좋은 직장’ 근로자의 정년만 연장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노후 생활을 좌우하는 퇴직금과 국민연금 수령액 역시 극심한 임금 격차 때문에 큰 차이가 난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4월 발표한 고용 형태별 근로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기준으로 1인 이상 사업체 정규직의 평균 시간당 임금은 2만1,203원으로, 비정규직(1만4,492원)의 1.5배에 달했다. 같은 정규직이라도 300인 이상 사업체 근로자의 시간당 임금은 3만3,232원으로, 300인 미만 사업체 (1만8,873원)의 1.8배였다. 비정규직의 경우 퇴직과 이직을 반복하기 때문에 연금 납부 기간이 정규직에 비해 짧아 수령액도 적다.
전문가들은 정년 연장이 노동시장 격차를 더 강화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임금구조 개편이나 불평등한 원ㆍ하청 구조 개선 등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고 말한다. 오계택 한국노동연구원 임금직무혁신센터 소장은 “(정년 연장이) 특정 집단에만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으려면 일종의 패키지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호봉제 중심 임금구조 개편이 핵심이다. 기업이 고령근로자 고용 부담으로 청년 신규고용을 줄이거나 계약직 고용을 늘리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다. 특정연령이 되면 임금을 낮추는 임금피크제나 직무에 따라 임금을 책정하는 직무급제 등이 주요 대안이다. 금재호 한국기술교육대학교 인력개발학과 교수는 “정년연장을 계기로 생산성에 따른 임금 결정구조를 만든다면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완화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공부문이나 대기업보다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 등을 중심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안주엽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도 청년층이 선호하는 일자리가 많은 대기업은 인력이 크게 부족하지 않은 반면 중소기업은 취업하려는 사람이 줄어든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 외에도 고령층 적합 직무 연구, 직장 문화 개혁 등 정년 연장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논의해야 할 사안은 많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상근자문위원은 “50대가 되었을 때 관리직에서 벗어나 할 수 있는 업무를 만들고 경력을 쌓아갈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산업협력실장(이사대우)은 “서비스업은 정년이 거의 없고, 일손이 부족한 중소제조업체의 경우 이미 정년 후 재고용하는 곳이 나타나는 등 사실상 정년을 지키기 어려운 현실 등을 감안해, 시범적으로 특정 업종에 정책을 시행하고 모니터링을 하면서 모범사례를 만드는 게 좋다”고 말했다.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며 적용 대상을 넓혀야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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