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본 대지진 3년을 맞은 2014년 3월 11일 일본 미야기현 이시노마키시 오카와 초등학교 정문에 마련된 추모제단 앞에서 한 남성이 쓰나미에 희생된 아이들의 명복을 빌고 있다. 이날 기온은 영상이었지만 하늘에서는 일찍 떠난 아이들의 영혼 같은 하얀 눈발이 내렸다. APㆍ연합뉴스

일본은 지진이 일어났을 때 가장 안전한 지역 중 하나다. 모든 건축물이 지진에 대비해 엄격하게 지어지고, 방파제와 경보시스템, 수많은 대피 훈련이 준비돼 있다. 그중에서도 일본의 공립학교는 무조건 높은 곳에 위치하고 철골과 강화 콘크리트로 지어진,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다.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일본 근대지진 관측사상 최대 규모(리히터 규모 9.0) 지진이 일본 도호쿠 지방을 강타했다. 몇 차례의 여진이 이어졌고, 한 시간 뒤 최대 높이 40.5m의 초대형 쓰나미가 연안 지역을 덮쳤다. 1만 8,500명이 사망하고 50만명의 이재민이 생겼으며 체르노빌 이후 최악의 원자력 재앙으로 불리는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폭발이 이어졌다. 아홉 개의 학교에 쓰나미가 덮쳤지만 이 중 심각한 물리적 피해를 입은 학교는 없었다. 단 한 곳, 일본 미야기현 이시노마키시 오카와 초등학교만을 제외하고.

‘구하라, 바다에 빠지지 말라’는 동일본대지진 당시 일본 주재 기자였던 영국 일간 더타임스의 리처드 로이드 패리가 학생과 교직원 80여명이 몰살된 오카와 초등학교 사건을 6년에 걸쳐 취재한 르포르타주다. 사고 당일 쓰나미로 이 지역 어린이 75명이 사망했는데, 그중 74명이 미야기현의 작은 시골 마을 가마야의 오카와 초등학교에서 목숨을 잃었다. 당시 이 학교의 재학생은 108명. 이 중 78명이 파도에 휩쓸렸고 단 4명만이 살아서 나왔다. 왜 하필 오카와 초등학교에서만 그토록 많은 아이들이 희생됐을까. 불가항력의 자연재해로 일어난 비극일까, 아니면 충분히 구출해낼 수 있는 여지가 있던 인재(人災)였을까.

2011 년 4월 7일, 쓰나미가 덮친 오카와 초등학교의 교실이 진흙으로 덮여 있다. APㆍ연합뉴스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이는 쓰나미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교사 엔도 준지뿐이다. 그는 교실에서 운동장으로 대피하는 과정에서 파도가 들이닥쳤고, 모든 절차를 따랐지만 속수무책으로 파도에 휩쓸려 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지진은 오후 2시 46분에 일어났고 학교의 시곗바늘은 3시 37분에 멈췄다. 아이들에게는 51분의 시간이 있었다. 200m 남짓 떨어진 대피소까지는 달려서 고작 몇 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51분 동안 아이들에게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우선 학교에 배포된 교육계획의 매뉴얼이 허술했다. 구체적 대피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산으로 대피하자는 외침이 아이들 사이에 일었지만, 진동 때문에 산으로 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어른들의 판단으로 제지됐다. 번복된 재난 방송도 현장의 혼란을 가중시켰다. 대피 논의에만 45분이 소요됐고, 대피소에 도착하기도 전에 74명의 아이와 10명의 교사가 파도에 휩쓸렸다. 물론 이 모든 진실이 밝혀지기까지 으레 그렇듯 치밀한 은폐 작업과 허위 진술, 거짓이 개입됐다.

쓰나미로 폐허가 된 오카와 초등학교의 2011년 4월 5일 모습. AP연합뉴스

진상규명위원회가 만들어졌고 보고서가 작성됐지만, 교육청 직원 중 어느 누구도 오카와 초등학교 사망사고로 파면 또는 징계받거나 공식적으로 문책받지 않았다. 아이들은 한꺼번에 발견되지 않았고, 부모들이 직접 중장비 자격증을 따고 굴착기를 운전해 진흙 속에 파묻힌 아이들을 찾아 나섰다. 책임과 배상을 판가름하는 소송이 지난하게 이어졌고, 유가족들은 피폐해져 갔다. 학교 건물 보존을 두고 공방이 이어졌다. 이 모든 과정은 동일본 대지진 3년 뒤 한국 사회에서 벌어진 비극이 전개된 상황과 데칼코마니처럼 닮아 있다.

책은 사건 발생 순간부터 시신 수습, 책임자 처벌까지 이르는 과정을 치밀하게 복기해 나간다. 살아남은 아이들부터 유가족, 목격자 주민들, 심령술사, 교육청 기록, 지방 공무원 등을 취재한 내용을 토대로 당시 상황을 복원한다. 수많은 사람의 기억과 기록이 퍼즐처럼 짜맞춰지며, 51분의 틈새는 서서히 메워져 간다. 그러나 책을 읽는 일은 ‘어쩔 수 없이’ 그 수많은 목숨을 잃어야 했던 것이 아니라, ‘어쩌면’ 충분히 살릴 수 있었다는 안타까움을 재확인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확인할수록 그 사실은 오히려 고통을 배가시킨다. 그러나 그 뼈아픈 작업을 우리는 멈출 수 없다. 그것만이 우리가 다시는 똑같은 실수로 소중한 이들을 잃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 사실은, 누구보다 2014년 4월 16일을 겪은 우리가 더 잘 안다.

구하라, 바다에 빠지지 말라
리처드 로이드 패리 지음ㆍ조영 옮김
알마 발행ㆍ340쪽ㆍ1만 5,800원

한소범 기자 beom@hanko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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