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요건 못 갖춘 각하 이상 급증… 원인 찾으니 1인 무더기 재심청구
‘서초동 소송왕’이 무차별적으로 낸 수천 건의 재심청구 덕에 대법원 통계까지 왜곡된 것으로 드러났다.
19일 대법원이 발간한 ‘2019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대법원에서 처리한 민사 본안 소송 1만7,677건 중 원심 판결이 파기된 경우는 753건(4.2%)로 집계됐다. ‘세 번 재판받을 권리’를 이야기하지만 대법원에서 판단이 바뀔 만한 사건은 여전히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 셈이다.
눈길을 끄는 건 대법원이 상고를 받아들이지 않는 상고기각이 1만1,125건(62.9%)으로 제일 많은 비중을 차지하긴 했지만,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로 아예 각하된 사건도 5,250건(29.7%)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이는 전년도인 2017년 민사사건 가운데 상고기각 비중이 90.8%(1만2,137건), 각하 명령 비중이 0.5%(68건)였던 것과 큰 차이를 보인 것이다.
대법원은 뒤늦게 원인을 파악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서초동 일대에서 이른바 ‘소송왕’이라 불리는 A씨가 지난해에만 수천 건의 재심청구 소송을 냈기 때문이란 사실을 확인했다. A씨가 낸 수천 건의 소송은 당연히 전부 각하됐다. A씨의 대량 상고로 민사사건 전체 상고 건수도 2017년 1만5,364건에서 지난해 1만9,156건으로 4,000건 가까이 늘었다. 하지만 A씨의 상고 사건만 빼버리면 대법원에 올라온 민사사건은 2017년 1만3,173건, 지난해 1만3,025건으로 오히려 100여건 정도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법원 관계자는 “몇 년 전 법적 분쟁에서 패소한 뒤 이런저런 소송을 계속 내다 지난해 부쩍 많이 낸 것으로 알고 있다”고만 언급했다.
한편 민사 본안 소송 기준 상고심에 현재 계류 중인 사건은 모두 8,661건, 이 가운데 2년이 넘어 ‘장기 미제’로 분류된 사건은 606건으로 나타났다. 2017년에 비해 69건 늘었다.
유환구 기자 red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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