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삶의 행보, 그 속에 얽히고설킨 기쁨과 고난을 그저 목도하는 것만으로 위로받을 때가 있다. 때로는 덤덤하게, 혹은 온 힘을 다해 자신의 깊은 내면을 터놓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어느 문학, 예술 작품보다 가슴 깊게 남는 이유다.
‘언니들이 있다’는 한국일보 김지은 기자가 ‘삶도’를 연재하면서 만난 인터뷰이 중 이 시대를 치열하게 살고 있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골라 담은 책이다. 삼성 계열 최초 공채 출신 여성 임원인 최인아씨부터 연세대를 자퇴하고 중증 발달장애 동생과 영화 ‘어른이 되면’을 찍은 장혜영씨,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 연애 칼럼니스트 곽정은씨 등 12명의 ‘언니들’이 등장한다.
한철로 끝나는 어떤 뜨거운 사안의 주인공이 아닌, 인터뷰이 그 자체의 우여곡절과 세상을 향한 응수를 밀도 있게 담았다. 저자의 말대로 “겨울날 아랫목 같은” 이야기들이다. ‘물어야 할 것만을 집약적으로 묻는’ 인터뷰 공식을 벗어 던졌다. 마치 어느 기억 한 점을 두고 길고 긴 이야기를 주고받는 언니들의 수다를 엿보는 기분이다. 울다가 웃다가,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샌가 마음이 조금 넉넉해짐을 느낀다.
언니들이 있다
김지은 지음
헤이북스 발행ㆍ312쪽ㆍ1만4,800원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