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 임대료 연체 세입자 변호사, 판사가 잘못된 기준 적용 패소 
 “성공보수·의뢰인 신뢰 상실 고통”이례적 국가배상 청구했지만 
 “판사 위법·부당한 목적 없었다” 법원 책임 회피에 또다시 패소 
대한민국 법원. 한국일보 자료사진

소송에서 진 변호사가 “판사가 법 조항을 잘못 적용했다”면서 국가배상을 청구했으나 다시 패소했다. 판사의 재판 잘못에 대해 법원이 국가배상 책임을 너무 좁게 해석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003단독 황한식 부장판사는 전모 변호사가 국가를 상대로 “위법한 판결로 정신적 고통을 입었으니 위자료 1,000만원을 지급하라”며 낸 손해배상 청구를 17일 기각했다.

전 변호사는 두 달이 좀 넘는 기간 동안 임대료를 연체했다는 이유로 건물주가 낸 명도소송 사건에서 세들어 살던 사람의 변호를 맡았다가 2017년 1심에서 패소했다. “3기분(세달치) 이상 연체한 경우 임대인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이 2015년 개정됐고, 양측도 임대 계약 때 ‘세달치 연체’ 기준을 특약조항으로 넣어뒀음에도 이 사건 1심 재판부는 법 개정 이전 기준(두달치 이상일 경우 계약 해지)을 적용했다. 전 변호사는 “지지 않을 것이라고 상담해줬는데 패소가 나오는 바람에 성공보수를 못 받은 것은 물론, 의뢰인과의 신뢰 관계가 깨져 항소심 재판은 다른 변호사가 가져가는 등 고통을 받았다”며 소송을 냈다.

변호사가 자기 사건 패소 판결을 가지고 국가배상을 청구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하지만 이 소송도 전 변호사의 패소로 끝났다. 황 부장판사는 “사건을 담당한 법관이 위법ㆍ부당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거나 법관의 직무수행상 준수기준을 현저히 위반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런 판단 근거는 2001년 대법원 판례다. 대법원은 “재판과정의 잘못은 따로 불복절차에 의해 시정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며 “재판에 잘못이 있더라도 국가배상 책임이 인정되려면 법관이 위법ㆍ부당한 목적으로 재판을 하는 등 특별한 사정이 있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판사의 잘못에 대한 국가배상 청구가 기각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염전노예’ 피해자가 “법원이 염전주 측이 제출한 합의서만 믿고 사실상 무죄인 ‘공소기각’ 판결을 내렸다”며 국가배상을 청구한 사건도 지난해 4월 기각됐다. 지적 장애인이 써낸 합의서를 재판부가 확인 한번 해보지 않은 것은 잘못이란 주장이었으나 대법원 판례를 꺾지 못했다. 지난 3월 판사가 날짜를 잘못 계산해 부동산 가압류가 취소되면서 배당을 받지 못한 채권자에 대해 서울고법은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하지만 극히 일부 사례라는 게 법조계 평가다.

우리 법원이 과감하게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못한다는 불만은 그래서 나온다. 국가배상법은 공무원이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해 손해를 입힌 경우 일단 국가가 배상하고, 공무원의 잘못이 중대할 경우 해당 공무원에 대해 구상권을 행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판사가 시간에 쫓겨 수많은 판결을 하다 보면 실수가 나올 수 밖에 없어 구상권 행사까지 하는 건 무리”라면서도 “법에도 없는 지나치게 엄격한 요건을 판례로 만들어 명백한 잘못이 있다 해도 ‘그럴 목적이 없었다’는 식으로 빠져나가는 건 피해자 입장에서 불합리하게 보인다”고 말했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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