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다와 탕탕의 지금은 여행 중(115)]요르단 고대 도시 페트라 탐험 1편
요르단 여행의 정수이자 감성적 사유인 페트라. 2,000년 전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체할 정도로 빠르다. 시크(Siq)를 지나 카스르 알빈트(Qasr Al-Bint)까지, 4km의 메인 트레일을 따라 묵묵히 걸었다. 끈끈한 바람과 풀리지 않는 역사가 무심히 마중 나왔다.
자, 여러분은 이제 시간 여행자가 됩니다
페트라의 시간 여행은 방문자 센터에서 시작된다. 떠날 준비도 하기 전에 착륙인가. 모래 색 암벽 구릉이 포복한 채 길게 이어지는 사이, 고대 건축물이 간헐적으로 몸을 세우기 시작했다. 독한 이질감이다. ‘21세기’ 출입문을 지나자마자 ‘기원전’ 페트라로 뚝 떨어지다니. 페트라는 2,000년 전 무역에 능통했던 나바테아인의 보금자리다. 고대의 부귀영화를 누렸던 수도로 특정 건축물이 아니라 도시 전체를 가리킨다. 넓고 크고 때론 가파르다. 터번을 두른 한 사내가 서 있는 모습만으로도 시간과 공간 감각에 깊은 혼란이 왔다. 대체 우린 어느 별로 밀려온 걸까. 여기는 페트라, 해발 950m 사막 고원이다.
울림과 결의 탐험으로 향하는 출사표, 시크(Siq)
그늘 한 점 없는 땡볕 아래 행진. 길을 따라 늘어선 말이 발품을 줄이라는 듯 유혹한다. 그 사이, 뚜벅이 여행자는 사각 탑 형태의 무덤인 드진 블록(Djinn Blocks)과 오벨리스크 무덤을 거친다. 이내 하늘이 좁아지는 협곡이 시작됐다. 검붉은 긴장이 감돈다. 비바람을 머금은 협곡의 붉으락푸르락 조각상이 양 옆으로 길을 좁힌다. 구불구불 앞을 가늠할 틈이 없다. “덜커덩, 덜커덩” 협곡에 갇힌 마차 소리가 웅장하게 울린다. 용암이 흘러내리는 듯한 암벽과 밀도 차가 큰 퇴적층의 결이 심장을 더욱 쫄깃하게 한다. 앞서 나가다가 뒷걸음치고 자꾸 기웃거리게 한다. 나바테아인의 천재성도 곳곳에서 발견된다. 메마른 사막에 안정적으로 물을 공급하기 위한 수로가 현재도 건재하다. 암벽에 손끝을 댄 채 걷는다. 대체 이 길의 끝엔 무엇이 있을까? 1.2km에 달하는 시크는 페트라의 신비를 증폭시키는 관문이자 본격적인 모험의 출발점이다.
미래야 부탁해, 알카즈네(Al khazneh)의 비밀
협곡으로 좁아진 시야가 열리는 곳, 알카즈네다. 빛의 은총을 받아 붉게 개화하듯 절벽에 새겨져 있다. 허리를 곧게 펴고 고개를 끝까지 쳐든다. 알카즈네는 바위에 깊이 조각된 높이 약 39m, 너비 25m의 건축물, 페트라의 탐스러운 꽃이다. 기원전 1세기경 건설되었다는 것 외엔 믿거나 말거나 한 가설 혹은 전설뿐이다. 나바테아 왕의 무덤이라는 설도, 파라오의 유물이 숨겨졌다는 설도 있다. 이런 미스터리는 ‘가까이서 볼수록 더욱 가슴 뛰게 한다’는 페트라의 관전법과도 통한다. 정교하고도 화려하다. 손으로 바위를 깎은 것이라고 상상하기 힘들다. 이토록 놀라운 보존 상태는 ‘망각’ 덕분이었다. 페트라는 지진으로 멸망한 기원후 7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초까지 깊은 암벽 산에 몸을 숨긴 채 잊혀져 왔다. 스위스의 탐험가 요한 부르크하르크의 의지로 그 모습은 드러났을지언정, 여전히 잃어버린 도시다. 요르단 야르무크 대학의 고고학자 알 무헤이센에 따르면 현재까지 발굴한 면적이 고작 도시 전체의 15%에 지나지 않는다. 더 큰 진실과 실체는 미래의 숙제로 남아 있다.
페트라는 살아 있다, 호객하거나 찍히거나
메인 트레일을 따라 걷는 페트라는 결코 얌전하지 않다. 오히려 발랄하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페트라표 택시’ 호객꾼 덕이다. 초입부터 말, 낙타, 당나귀 중 하나를 골라잡으라는 식이다. 호객은 성행하되 불편하진 않다. “페라리 탈래? 아니면 람보르기니?” “에어컨이 빵빵해.” 따위의 영혼 없는 농담으로 땡볕을 잠시 잊게도 한다. 둘째는 ‘인생사진’ 성지로 입소문이 난 까닭이다. 역사를 몰라도 존재 자체만으로 빛나는 페트라다.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자연광과 암벽 건축물이 기념사진을 남기려는 욕구를 마구 부채질한다. 덕분에 뭇 여인들의 고된 드레스 행렬도 이어진다. 누군가는 그에 비해 심히 ‘캐주얼한’ 자신의 복장을 원망할지도 모르겠다.
파사드 거리로 이어지는 고대의 오픈 갤러리
흥분을 누르고 알카즈네를 지나면 파사드 거리다. 여전히 거대한 바위산의 보호 아래 하늘이 완전히 개방된다. 좌로는 원형극장, 우로는 여러 스타일의 왕가 무덤이 겹치면서 서로 맞물리고 때론 어깨를 나눈다. 능선을 따라 지어진 원형극장은 106년 로마에 합병된 페트라 역사의 단초다. 95m 반경과 45개의 열주 앞에 서면 그 시절 7,000 관중의 환호를 압축한 거센 바람이 분다. 왕가의 무덤군으로 가벼운 오름을 했다. 여기선 나바테아인의 개방적 관용을 짐작한다. 아, 페트라. 적당히 건너뛰고 싶은 마음을 무너뜨린다. 무덤마다 아시리아와 그리스, 로마의 여러 양식을 적극 수용한 까닭에 고대 건축 양식을 탐미할 의지에 불을 지핀다. 큰 숨을 들이마신다. 무덤군을 등지면 페트라 속 자신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다. 바위산 속에 숨은 고대 도시가 내려다보이고 또 그 너머를 상상한다.
돌아갈까, 계속 갈까? 열주 거리의 선택
현재까지 발굴된 페트라 내의 번화가라면 단연 열주 거리다. 종교적 성지였던 대사원과 카사르 알빈트 곁으로 고대 주요 상거래의 길이 통쾌하게 뚫린다. 녹초가 될 이 시점은 태양이 가장 뜨겁다. 보유한 1.5리터의 물도 소진한 지 오래다. 사원 구석구석을 걸으며 고고학자 시늉을 하는 사이, 메인 트레일은 카사르 알빈트에서 끝이 난다. 입구부터 왕복 약 8km에 달하는 길이다. 여기서 두 갈림길에 선다.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계속 갈 것인가. 전자는 다른 시간대의 페트라를 만나는 길이요, 후자는 숨어 있는 수도원 아드 데이르로 고된 산행을 하는 길이다. “택시 탈래?” 낙타의 유려한 등허리가 유혹했다. 그러나 인생은 후회 없이. 자, 직진이다.
*다음 편은 아드 데이르로 향하는 진땀 나는 산행기가 이어집니다.
강미승 여행 칼럼니스트 frideameetssomeone@gmail.comㆍ사진 @rve around(탕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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