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IT 기업 카카오의 자회사 카카오M이 드라마에 이어 영화 제작에도 착수했다. IT업계 라이벌 네이버가 네이버웹툰 아래 스튜디오N을 설립해 드라마와 영화 등 영상 콘텐츠 제작을 본격화한 것에 대한 공격적 대응이다. 포털과 모바일 사업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펼쳐온 두 공룡 기업이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도 일전을 불사하고 있어 국내 콘텐츠 업계에도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카카오M은 17일 보도자료를 통해 영화사 월광과 사나이픽쳐스의 지분을 인수해 최대 주주 지위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월광은 ‘범죄와의 전쟁’과 ‘공작’ 등을 연출한 윤종빈 감독과 프로듀서 출신 국수란 대표가 이끄는 제작사다. 한재덕 대표가 설립한 사나이픽쳐스와는 협업 관계를 맺고 있다. 사나이픽쳐스는 ‘검사외전’ ‘보안관’ ‘돈’ 등을 월광과 함께 만들었고, ‘신세계’와 ‘무뢰한’ ‘아수라’ 같은 선 굵은 장르물을 주로 선보여 왔다. 카카오M은 이번 인수를 통해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콘텐츠 전반에 걸쳐 제작 역량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카카오M 관계자는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영화 부문에서 가시적인 첫 성과물을 선보이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카카오M은 tvN ‘진심이 닿다’와 MBC ‘붉은 달 푸른 해’를 만든 드라마 제작사 메가몬스터도 자회사로 두고 있다. 메가몬스터는 카카오 산하 다음웹툰에서 연재한 웹툰 ‘망자의 서’를 포함해 웹툰 3편을 드라마로 제작해 내년부터 매년 1편씩 3년간 KBS에서 방영하기로 했다.
최근에는 MBC ‘무릎팍 도사’와 JTBC ‘비긴 어게인’ 등을 연출한 오윤환 PD도 영입했다. 웹 예능과 웹 드라마 등 디지털 영상 콘텐츠 부분에 제작 역량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뿐만 아니라 자회사인 BH엔터테인먼트(이병헌 한지민 등 소속)와 매니지먼트 숲(공유와 공효진 등), 어썸이엔티(박서준 등), 제이와이드컴퍼니(김태리 등), 킹콩바이스타쉽(이광수 등), 이앤티스토리엔터테인먼트(김소현)가 공동으로 신인 발굴 오디션을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최근 웹 드라마가 신예 스타 탄생의 산실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오디션은 디지털 콘텐츠 경쟁력으로 직결되는 인적 자원 확보를 위한 전략적 성격이 짙다.
스튜디오N도 네이버웹툰에 연재된 인기 웹툰을 기반으로 영상 사업을 공격적으로 펼치고 있다. 현재 방영 중인 OCN 드라마 ‘타인은 지옥이다’와 20일 첫 방송 되는 tvN ‘쌉니다 천리마마트’가 스튜디오N이 제작한 작품이다. 두 드라마 외에도 영상화를 확정한 웹툰이 이미 20편에 달한다. ‘여신강림’과 ‘금수저’ ‘내일’ ‘스위트홈’ ‘좋아하는 부분’ ‘오늘도 사랑스럽개’ ‘호러와 로맨스’는 드라마로, ‘상중하’ ‘피에는 피’ ‘대작’ ‘마음의 소리’ ‘머니게임’ ‘용감한 시민’ ‘연애의 정령’은 영화로 만들어진다. 웹툰 원작이 아닌 영화 ‘마더스’도 준비 중이다.
스튜디오N은 영상화에 적합한 원작을 발굴해 기획 개발을 한 뒤 기존 제작사와 공동 제작을 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스튜디오N 관계자는 “제작사에 원작 판권을 판매하고 나면 이후에 제작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전혀 파악할 수 없었고 제작이 무산되는 경우도 많았다”며 “스튜디오N은 웹툰이 신속하게 영상화될 수 있도록 지원할 뿐 아니라 투자금 유치와 웹툰 판권 구매에 어려움을 겪던 기존 제작사들과 협업하는 형태라는 점에서 콘텐츠 업계에서 환영 받고 있다”고 말했다.
카카오M과 스튜디오N이 아직은 터 닦기 단계에 있지만 향후 본격적으로 결과물을 쏟아내기 시작하면 그 영향력은 지대할 전망이다. 콘텐츠 산업의 지형도가 완전히 재편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웹툰과 웹소설 같은 풍부한 원천 콘텐츠와 탄탄한 자본력, 우수한 제작 인력, 다양한 플랫폼을 기반으로 IT업계 양대 공룡 기업이 콘텐츠 업계 최강자로 자리바꿈 할 수 있다.
특히 업계 관계자들은 카카오M의 영화 제작사 인수가 가져올 여파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IT 기업에 뒤이어 콘텐츠 분야 대기업들도 제작사 인수 합병을 통해 몸집 불리기에 나서게 되지 않겠냐는 전망이다. 충무로의 한 중견 제작자는 “디즈니가 픽사스튜디오(‘토이 스토리’)와 마블스튜디오(‘어벤져스’ 시리즈), 루카스필름(‘스타워즈’ 시리즈, ‘아바타’)을 차례로 인수해 콘텐츠 제국으로 거듭났듯이, 카카오M도 궁극적으로 디즈니의 비즈니스 모델을 따르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향후에는 대기업들도 군소 제작사들을 스튜디오 개념으로 편입해 경쟁력을 높이려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제작자들은 이 같은 변화를 위기보다는 기회로 평가하고 있다. 콘텐츠 산업이 성장 한계에 부닥친 상황에서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선 해외 진출이 필수이고, IT 기업의 콘텐츠 제작 투자가 세계 시장을 겨냥한 콘텐츠 경쟁력 향상으로 이어질 거라 보기 때문이다. 투자배급사의 한 관계자는 “당장에는 네이버와 카카오가 보유한 원천 콘텐츠 사용이 어려워져 원작 확보 경쟁이 더 심화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투자사와 제작사가 자체 콘텐츠 생산 능력을 키우는 계기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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