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판 이상 시전집 ‘나는 장난감 신부와 결혼한다’ 낸 박상순 시인
아방가르드 시인, 소설가, 화가, 조선총독부의 건축기사, 모던보이,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스물 일곱의 나이로 세상을 뜬 시인 이상(1910~1937)을 수식하는 말은 짧은 생애가 믿기지 않을 만큼 다양하다. “13인의 아해가 도로를 질주하오”로 시작하는 시 ‘오감도’가 1934년 조선중앙일보에 연재될 당시 “(작가를) 때려죽이겠다”는 독자 투고가 있었을 만큼 외면 받았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국문학과 논문 주제 1순위이자 교과서에 작품이 실린 대표적 근대 시인 중 한 명이 됐다.
내년 이상 탄생 110주년을 앞두고 이상의 시를 최초로 전면 한글화하고 해설한 책 ‘나는 장난감 신부와 결혼한다’가 나왔다. 시의 전통을 뒤집는 실험시로 문단에 파격을 던져온 박상순(57) 시인이 이상의 시 50편의 한글화 작업과 해설을 맡았다. 책의 제목은 1936년 이상이 국내 최초 초현실주의 문학동인지 삼사문학에 발표한 작품에서 따 왔다. 17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한국일보사에서 만난 박 시인은 “언젠간 꼭 나왔을 책”이라고 말했다.
박 시인과 이상의 만남은 예견된 운명이었다. 이상은 시인이지만 동시에 조선미술전람회에 유화로 입선한 화가이자 출판사 편집자로도 일했다.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시인으로 등단, 민음사 북디자이너로 입사해 편집인까지 올랐던 박 시인의 이력은 이상과 빼 닮았다. 그러나 오히려 너무 닮은 이력 탓에 이상의 아류로 보일까 이전까지 해설 제안은 모두 거절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때가 됐다’는 느낌이 왔다. 정작 책을 쓰는 데는 6개월도 채 안 걸렸다. “그냥 있던 재료를 꺼내 쓰면 됐으니까요. 판박이 삶인 만큼, 이상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 굳이 새로 장을 보러 나갈 필요가 없었던 거죠.(웃음)”
이번 작업에서 박 시인이 무엇보다 중점을 둔 작업은 철저히 ‘시각 중심주의’ 기법으로 이상의 시를 보는 것이었다. “사실 이전까지는 이상의 시를 두고 시각 중심주의다, 회화적이다, 특징만 요약할 뿐 구체적으로 어떤 시각 이미지로 구성돼 있는지 제대로 설명해주는 경우가 없었어요. 20세기 초반 세계 예술사적 관점에서 이상의 시 전체를 훑고, 문학과 회화의 상대적 좌표를 살펴보고자 하는 시도는 아마 이번이 처음일 거예요.” 이번 해설집에는 카메라 옵스큐라, 해부도, 러시아 미래주의, 큐비즘, 뒤샹, 마그리트 등 시 개념만큼이나 많은 미술 기법과 화가들이 시 해석을 위해 동원됐다.
박 시인은 모더니즘에 대한 오해가 이상이 시대와 현실을 외면한 시인이라는 오해를 불러왔다고 꼬집었다. “모더니즘이 난해하고 딱딱하기 때문에 현실과 괴리됐다고 오해하지만, 사실 모더니즘은 주관적이고 낭만적인 입장이 배제된, 무엇보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현실을 보는 태도예요. 계몽이나 사회 정치적 목적을 위한 용도로 사용하지 않을 뿐, 당시 시대상황에 대한 입장표명을 예술적 방식으로 한 거죠. 오히려 자기감정에 도취돼 반성문 쓰기를 했던 작가들과 달리 이상은 철저하게 객관의 눈으로 현실을 봤어요. 그리고 그 현실이란 당연히 제국주의 일본 치하의 식민 현실이죠. 이상은 그 누구보다 반체제 정신이 강했던 저항 시인이자 항일 시인이에요.”
이러한 이상의 객관적 현실인식은 이상이 처한 궁핍한 현실에서 기인했다. 그는 당시 다른 예술가들과 달리 유학을 가지 못 했고, 건축과 역시 집안 형편 때문에 진학했다. 가족 부양을 위해 늘 먹고 살길을 고민해야 했다. 박 시인은 “이상 본인이 도시빈민이었기 때문에 당시의 현실이 보였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시인에 따르면 ‘거리 밖의 거리’라는 시에는 곧 철거될 서울 신당리 버티고개 빈민촌에 살던 가족들의 삶과, 동시에 이를 철거해야 하는 총독부 건축기수인 이상의 번민이 드러난다. 이뿐 아니라 대동인쇄소 파업운동과 여성들이 처한 차별적 상황 등 노동과 젠더를 아우르는 첨예한 현실인식이 이상의 시에 담겨 있다고 박 시인은 덧붙였다.
이상은 시대를 앞서나갔지만, 생전에는 몰이해에 외로워했다. 박 시인 역시 추상시인으로서 ‘전위적이고 낯설다’는 독자들의 원성을 달고 다녔다. 박 시인은 “만인의 박수를 꿈꾸진 않아요. 다만 자신이 만든 것을 누군가와 함께 읽고 이야기할 날을 꿈꿀 뿐”이라고 말했다. 이상의 시는 쓰인 지 100년 가까이 됐지만 여전히 살아남아 읽힌다. ‘완벽한 이해’는 불가능할지라도 그것만으로도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의 한은 어느 정도 풀렸으리라.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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