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밈’ 도구 삼아 인종차별 세뇌
미국의 백인ㆍ남성 우월주의 단체들이 10대 소년들을 조직원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 극우단체들은 과거 10대 청소년들을 끌어들이려고 학교 교정에서 백인 우월주의 내용을 담은 전단을 살포하는 수법을 주로 써왔다. 청소년들이 휴대폰을 통해 SNS에 몰입하는 시간이 크게 늘면서 이들 극우 단체들도 공공연히 온라인에서 ‘백인우월주의 단체 신입회원 영입’ 작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17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는 “세계적인 신(新) 나치 웹사이트 데일리스토머(The Daily Stormer)가 최근 ‘11살 소년’을 새로 영입할 주요 타깃으로 삼고 리크루팅에 착수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레딧, 유튜브 등 10대들이 즐겨 쓰는 SNS 플랫폼을 통해 이뤄지는 이 단체의 조직원 영입 방법으로는 주로 ‘밈(memeㆍ온라인에서 공유하는 재미있는 사진이나 영상)’이 사용된다. 이 조직은 처음엔 유색인종이나 여성을 희화화한 각종 밈을 영입대상 사용자에게 노출시킨다. 이 같은 밈에 익숙해지는 동안 10대 소년은 인종ㆍ성 차별에 무감각해지고 결국에는 심각한 수준의 인종차별주의에 세뇌되는 것이다. 인종ㆍ환경문제 관련 비영리 단체인 웨스트스테이트센터의 린제이 슈바이너는 “밈을 클릭하고 나면 또 다른 밈이 나타나고, 클릭하면 클릭할수록 성ㆍ인종 차별적 내용은 더욱 짙어진다”며 “나중에는 흑인이 본질적으로 폭력적 성향의 인종으로 묘사된다”고 설명했다.
실제 한 밈에서 10대 백인 소년 한 명은 미국 사회에서 금기시돼 있는 ‘Nigger(검둥이라는 뜻의 비속어)’라는 말을 사용하고, 다른 밈에는 또래 소녀를 ‘남자와 성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여자’라는 뜻이 담긴 은어로 부르는 모습이 담겨 있다. 10대 시절 신나치 단체에 가입해 백인우월주의자로 활동했던 크리스찬 피콜로니는 “예나 지금이나 10대들은 극우단체들이 세를 불리기 위한 핵심적인 존재”라며 “하지만 10대 극단주의자들이 최근처럼 빠르게 증가한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SNS 플랫폼을 통한 백인우월주의자 영입이 그만큼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뜻이다.
백인우월주의 단체는 사회적 소속감을 느끼고 싶어하며 빨리 어른으로 인정받고 싶은 이 또래 남자 아이들의 심리를 교묘하게 파고 들고 있다. 길 노엄 하버드 의대 정신과 교수는 “11~15세 남자 아이들은 나는 누구이고, 누가 나를 받아들여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강한 시기”라며 “강한 소속감은 이 또래 아이들을 유인할 수 있는 엄청난 미끼”라고 설명했다. 피콜로니는 “정치나 사상 같은 것엔 관심도 없었다. 나는 14살이었고 그들(백인우월주의 단체)은 나에게 정체성과 소속감을 줬고, 거기에 이끌렸다”고 회상했다. 제3세계 국가의 많은 무장조직이 소년병들을 모집할 때 그들을 어른으로 대우하고, 강한 소속감을 심어주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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