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근 농장 포함 4700마리 살처분 “감염 경로 도통 알 수 없어 답답”
[저작권 한국일보]18일 오전 경기 연천군의 한 양돈농가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발생해 방역당국 관계자들이 농장으로 들어 가고 있다. 연천=고영권 기자

“오전까지만 해도 사료도 잘 먹고 멀쩡했던 돼지가 오후에 갑자기 죽어 있어 놀랐습니다.”

18일 아프리카돼지열병(ASF) 확진 판정이 나온 경기 연천군 백학면 A돼지사육농가의 외국인 근로자 라나도즈라이(38ㆍ네팔)씨는 이날 본지 기자와 만나 이 같이 밝혔다.

출입통제선 안에서 전날 상황을 설명하는 그의 표정은 시종일관 어두웠다. 그는 “어제 방역당국에 신고한 뒤 걱정이 돼서 농장 사람 모두 밤새 한숨도 못 잤다”고 말했다.

이날 찾은 A농장 입구엔 ‘긴급초동방역’이란 문구의 통제선이 쳐 있었다. 방역 관계자 외에는 농장 출입이 철저하게 통제됐다. 전날 파주에 이어 연천까지 ASF 방역선이 뚫리면서 방역당국은 더 이상의 확산을 막기 위한 차단방역에 더욱 고삐를 죄는 분위기였다.

ASF가 발병된 농가는 전형적인 시골 마을에 위치해 있었다. 인근엔 주택도 2곳 밖에 없어 사람의 왕래도 거의 없었다. 이 농장과 맞닿아 있는 또 다른 돼지농장은 A농장주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곳이다.

[저작권 한국일보]18일 오전 경기도 연천군의 한 양돈농가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발생해 방역당국 관계자들이 농장 안에서 살처분 준비를 하고 있다. 농가에 붙여진 아프리카돼지열병 예방수칙 플래카드가 무색해 보인다. 연천=고영권 기자

오전 9시쯤에 이르자 농림식품부 등 방역당국 차량이 바삐 농장으로 들어갔다. 살처분용 포크레인도 농가로 향했다. 잠시 뒤 중장비의 땅을 파는 소리가 들렸고, 곧이어 살처분 작업이 시작됐다. 농림식품부와 경기도는 이날 A농장 등 부자가 운영하는 농장 2곳에서 사육 중인 돼지 4,700마리를 모두 땅을 파 묻기로 했다.

치명적인 돼지 전염병이 발병했다는 소식에 연천은 물론 인근 포천지역 양돈농가들은 그야말로 ‘패닉’에 빠졌다. 무엇보다 감염 경로가 오리무중 상태여서 언제, 어디서 ASF가 터질지 몰라 조마조마해 하고 있다. 성경식(56) 대한한돈협회 연천군 지부장은 “돼지 열병의 경우 접촉에 의해 전염이 되는데, 지금까지 감염경로를 도통 알 수가 없어 농가들의 불안감이 더욱 크다”며 “그냥 방역에만 집중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ASF의 발생 원인으로는 △바이러스가 들어간 잔반을 먹이거나 △농장 관계자가 발병국을 다녀온 경우 등이 거론되는데, 확진 판정이 난 파주 연천 농가 모두 특별한 발병 의심 사유는 찾지 못하고 있다.

이날 ASF 확인판정이 난 연천은 100농가가 17만 7,159마리의 돼지를 키우고 있다.

[저작권 한국일보]18일 오전 경기 연천군의 한 양돈농가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발생해 방역당국 관계자들이 방역작업을 하고 있다. 연천=고영권 기자

ASF 확산에 따라 20일부터 내달 6일까지 파주, 연천 등 비무장지대(DMZ) 일원에서 개최 예정이던 행사도 줄줄이 취소됐다. 도는 '9ㆍ19 평화 공동선언' 1주년 기념 'Live DMZ' 콘서트(21일 파주 임진각), 'DMZ 트레일러닝'(20∼22일 파주ㆍ김포ㆍ연천~철원) 등 3개 행사를 취소한다고 이날 밝혔다. 김포시도 26일 예정된 김포도시철도 개통식을 백지화했다. ASF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시는 설명했다.

경기도와 맞닿은 강원도도 초비상이다. 파주 ASF 확진 농가를 출입했던 차량이 강원지역 축산시설 23곳을 다녀간 것으로 파악됐기 때문이다. 도는 이들 농장에 대해 21일간 이동제한 조치를 내렸다. 철원 동송읍의 돼지 사육 농장주는 “돼지열병 확산이 현실이 될까 두렵다”며 “가족까지 차단방역에 사활을 걸고 있다”고 말했다.

이종구 기자 minjung@hankookilbo.com

철원=박은성 기자 esp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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