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문화가 부족했던 필자의 어린 시절만 하더라도 초등학교 가을 운동회는 동네잔치 같은 풍경을 연출하곤 했다. 부모님과 함께하는 이인삼각 경기나, 우월한 체력의 아버지들이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계주는 초등학생들에게는 나름 커다란 볼거리였다. 여기에 운동장의 흙먼지 속에서 먹는 김밥에는 오늘날의 황사와는 비견될 수 없는 낭만과 운치가 있었더랬다. 또 오재미로 장대에 매달린 커다란 박을 터트리는 피날레 역시 자못 흥미진진하기 짝이 없었다.
운동회는 청군과 백군으로 나뉘었는데, 당시 운동회 모자는 청백이 양면으로 제작되어 있었다. 즉 쓰는 방향에 따라서 청군이 될 수도 백군이 될 수도 있던 셈이다. 이 때문에 청군이 백군으로 스파이가 되어 잠입하는 일도 종종 발생하곤 했다.
그런데 여기서 드는 의문 한 가지. 청의 반대 색이 백이 맞나? 푸른색의 반대는 붉은색이 아닌가? 또 하얀색의 반대는 당연히 검은색이고! 그런데 왜 우리는 청백전을 했던 것일까?
바둑판의 흑돌과 백돌의 대립. 그리고 청사초롱이나 붉은색과 푸른색의 울긋불긋함을 나타내는 왕궁과 사찰의 단청(丹靑) 등을 보면, 우리 조상들 역시 흑백과 적청의 상반됨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운동회는 왜 하필 청백전으로 치러졌던 것일까?
혹자는 원래는 청색과 적색이었던 것이 한국전쟁 등을 거치면서 공산주의, 즉 빨갱이한테 데어서 의도적으로 빨간색이 빠졌다고도 한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의 운동회에는 너무나도 크나큰 슬픔이 묻어 있던 것이 된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 ‘음양론’과 ‘오행론’이라는 동아시아의 두 가지 기준에 따른 차이일 뿐, 공산주의와는 무관하다.
음양론에서 빛은 흰색이고 어둠은 검은색이다. 즉 명암인 셈이다. 또 때론 불을 나타내는 빨강과 물을 상징하는 파랑으로 대비되기도 한다. 태극기 속의 태극을 떠올려보면 되겠다.
태극 하면 보통 둥근 형태에 빨강과 파랑의 대비 구조가 떠오른다. 그러나 예전에는 태극을 주로 채색이 아닌 먹으로 표현했기 때문에 흑백의 대비를 이용하는 방식이 보다 일반적이었다. 즉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의 태극인 셈이다. 또 이때는 태극의 표현방식도 ‘주역’의 감괘(☵)와 리괘(☲)를 차용해 지금과는 차이가 컸다.
음양과 달리 오행은 목화토금수라는 다섯 가지를 기본으로 한다. 이런 차이는 고대에 서로 다른 기원을 가지고 음양론과 오행론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후일 한데 뒤섞이게 된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음양을 나타내는 해(日)와 달(月)에, 목화토금수의 오행이 결합된 일주일이다.
오행은 다섯 가지다 보니 언뜻 복잡해 보인다. 그러나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좌(동)-청룡 / 우(서)-백호 / 남-주작 / 북-현무 / 중앙-황인(성인)’의 구조가 실은 오행이다. 여기에서는 좌청룡-우백호의 좌우, 즉 동서가 상반되는데, 이의 색깔을 보면 청과 백의 대비가 존재함을 알 수 있다. 즉 청과 백이 대립하는 청백전은 좌청룡-우백호에서와 같은 오행의 관점에서 발생한 우리의 전통문화인 것이다.
이런 구조 때문에 불국사에는 국보 제23호인 청운교와 백운교가 있고, 사찰 안에는 청산(靑山)과 백운(白雲)이라는 명칭이 존재한다. 청산이란, 푸른 산이라는 의미니 움직이지 않는 불변의 뜻이다. 그러므로 이는 특정 사찰에 붙박여 사는 상주 스님을 가리킨다. 이에 반해 백운은 자유롭게 흘러 다니는 흰 구름을 의미한다. 운수납자(雲水衲子), 즉 물처럼 바람처럼 자유롭게 이동하는 수행자를 뜻하는 것이다. 그리므로 청산과 백운이란, 상주 승려와 객 스님에 대한 명칭이라고 하겠다. 즉 청백전과 같은 구조 역시 오랜 시간 유전해온 우리의 전통문화였던 셈이다.
자현 스님ㆍ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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