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배우들이 온라인에서 옛 연기가 재발견되며 생각지 못한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왼쪽부터 배우 김응수, 김영철, 전광렬. 어반웍스이엔티, KBS 제공ㆍ한국일보 자료사진

“진짜 주인공은 고니가 아닌 곽철용이다.”

올 추석 온라인에서 회자된 영화 중 하나는 ‘타짜’다. 11일 개봉한 3편 ‘타짜: 원 아이드 잭’이 아니다. 오히려 1편인 ‘타짜’(2002)가 더 주목을 받고 있다. 시리즈 중 가장 완성도가 높을뿐더러, 등장인물 또한 개성이 넘치기 때문이다. 주인공 고니(조승우)를 비롯해 정마담(김혜수) 등 주요인물이 가장 유명하지만, 근래에는 배우 김응수가 연기한 곽철용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그의 대사 하나하나 재조명되고, 나아가 배우의 전작을 찾아보는 이까지 생겼다. 네티즌에 의해 김응수가 강제로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중견 배우들이 온라인에서 예상치 못한 전성기를 잇달아 맞이하고 있다. 특별한 홍보 활동이 없었는데도, 1020세대가 직접 이들을 유물 발굴하듯 재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중에는 당시 배우의 활동 시기에 태어나지 않은 사람도 있다. 유튜브 등으로 쉽게 과거 작품을 볼 수 있게 된 미디어 환경 변화가 재발견을 가능케 했다.

김응수의 인기는 갑작스럽다. 구글 검색량을 보여주는 구글 트렌드에 따르면 김응수와 곽철용 검색 추이는 추석 연휴 직전인 9일부터 늘어나기 시작, 닷새 만에 10배 가까이 폭증했다. 곽철용 관련 밈(인터넷에서 유행하는 글과 이미지)도 이에 발맞춰 증가했다. 특히 ‘타짜’에서 고니와 대결하다 “묻고 더블로 가”라고 말하는 장면과 운전기사에게 “마포대교는 무너졌냐”는 외침이 유명하다. 김응수가 지난달 13일 서울 강남구 한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열린 영화 ‘양자물리학’ 제작보고회에서 “’마포대교는 무너졌냐’ 대사는 조승우에게 무기 꺼낼 시간을 주기 위한 애드리브였다”고 촬영 뒷이야기를 전했다.

‘자고 나니 유명해진’ 이유가 뚜렷하지 않은 점도 독특하다. 김응수는 25일 개봉 예정인 영화 ‘양자물리학’과 같은 날 첫 방송하는 tvN 드라마 ‘청일전자 미쓰리’ 홍보를 위해 예능프로그램에 활발히 출연 중이다. 일각에서는 개그맨 이진호가 지난 8일 tvN ‘플레이어’에서 곽철용 성대모사로 웃음을 준 점을 꼽는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온라인에서 만들어진 2차 창작물이 방송 콘텐츠보다 더 유명하기 때문이다. ‘타짜’ 곽철용 출연 장면으로 만든 페이크 예고편은 공개 8일만에 조회수 30만건을 육박했고, 패러디 광고 시안까지 나왔을 정도다.

영화 '타짜'의 곽철용을 영화 주인공처럼 만든 페이크 포스터가 온라인에서 인기다. 김도연 디자이너 제공

중견 배우의 재조명은 최근 뚜렷한 경향 중 하나다. 2002년 방영한 SBS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김두한을 연기한 배우 김영철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미군 장군과 임금 협상을 하는 장면에서 외친 “4달라”가 드라마 종방 10년이 훌쩍 지난 뒤에서야 큰 인기를 얻었다. 이 대사 하나로 지난 1월 대형 패스트푸드 업체 광고까지 촬영했을 정도다. 과거 KBS1 ‘태조 왕건’(2000~2002)의 궁예와 영화 ‘달콤한 인생’(2005)의 강 사장 연기도 주목을 받았으나, ‘야인시대’는 젊은 세대가 온라인에서 직접 발굴한 영상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사진이 주목을 받는 경우도 있다. 1999년부터 2000년까지 방영한 MBC 드라마 ‘허준’의 주인공 허준을 맡은 배우 전광렬은 이른바 ‘짤방’ 부자로 이름나 있다. 짤방은 온라인 게시물이 많은 이에게 읽히기 위해 게재하는 사진을 뜻한다. 많은 네티즌이 자신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 전광렬의 실감나는 표정 연기를 선택했다. 그 또한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지난해 허준 분장을 하고 광고를 촬영했다. 전광렬은 자신의 짤방을 공유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대화방에 직접 참여해 팬들과 소통하는 모습을 보였다.

온라인 내 중견 배우 발굴은 시청자의 콘텐츠 소비 문화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스마트폰 등을 통한 2차 창작이 그만큼 쉬워졌기 때문이다. 자신이 향유하지 못했던 과거 콘텐츠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되면서 중견 배우는 1020세대에 새로운 흥미거리가 됐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최근에는 소비자가 생산자 역할까지 수행하게 되면서 기존 콘텐츠와 다른 재미난 것들이 만들어지고 있다”며 “현재와 과거 콘텐츠를 비교하는 재미도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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