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교육 등 사회복귀 지원하는
입소시설 정원, 유럽의 10% 그쳐
“정신질환자가 건강을 회복했지만 전문가들로 구성된 위원회가 퇴원을 불허한 경험이 있어요. 숙소를 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요. 환자의 사회 복귀를 지원할 입소시설은 없다시피한 상황입니다. 사회로 나가도 부랑자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은데 어떻게 퇴원시키겠습니까.” (사회복지법인 나눔과행복의 박경덕 사무국장)
정신질환자를 위한 국내 정신재활 입소시설의 정원이 유럽의 10%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신질환자가 정신의료기관에서 퇴원하거나 가정에서 독립하는 경우, 직업교육 등을 받으며 안정적으로 사회 복귀를 준비하는 기숙사나 공동생활가정 등 입소시설이 꼭 필요하다. 그러나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재원 부담과 주민 반발 등을 이유로 입소시설 확충에는 소극적인 상황이라 민간 사회복지재단이나 개인이 사비를 들여 시설을 운영하는 형국이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크게 부족한 상황이다.
22일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에 따르면 지난해말 기준으로 전국 정신재활 입소시설은 227개소이고 정원은 2,529명이다. 인구 10만명당 정원으로 환산하면 4.9명인데 이는 2016년 세계보건기구(WHO)가 보고한 유럽지역(48명)국가의 10% 수준이다. 한국이 속해 있는 서태평양 고소득국가(10.2명)평균으로 따지면 절반에도 못미친다. 서태평양 전역(8.6명)으로 범위를 넓혀 비교해도 결과는 비슷하다. 뉴질랜드(26.2명) 호주(10.4명) 싱가포르 (6.4명)보다 적다. 조현병 등 중증 정신질환 유병률이 세계적으로 일정한 점을 고려하면 국내 정신질환자는 건강이 회복돼 병원에서 퇴원해도 홀로 고립돼 증상만 악화될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 시행으로 지난해부터는 강제입원이 된 정신질환자가 적법한 요건을 만족하지 못했을 경우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가 원칙적으로 퇴원 결정을 내린다. 위원회가 실제로 퇴원 결정을 내리는 정신질환자는 극소수이지만 사회복귀 준비를 준비할 입소시설의 필요성은 더 절실한 상황이다.
지난 4월 정신질환자 안인득에 의한 ‘진주참사’ 이후 보건복지부는 내년도 예산에서 정신보건 분야를 크게 증액했지만, 입소시설 예산을 포함한 정신보건시설 확충 예산은 올해와 같은 105억원이다. 이 예산은 단순히 입소시설 뿐 아니라 직업재활시설 건립 등에도 쓰인다.
입소시설의 설치ㆍ운영은 전적으로 지방자치단체의 의지에 달려있는 점도 문제다. 예산이 있다고 해도, 지자체가 요구해야만 복지부가 설치비용(절반)을 내려 보낸다. 그러나 주민 반발과 운영비 등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지자체는 민간에서 “내가 짓겠다”고 나서도 지원요구를 꺼리는 실정이다.
현장에서는 정부가 예산 지원이나 여론 조성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올해 4월 부산 연제구 금곡동에 입소시설을 완공하고도 주민 반발에 부딪혀 개원하지 못하고 있는 나눔과행복의 박경덕 사무국장은 “건강한 사람이나 다름 없을 정도로 건강이 호전된 환자를 위한 시설이지만 주민들 반대는 여전하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관련 시민사회단체들 사이에서는 정부가 지자체를 설득해 임대주택 등 입소시설로 활용할 부지만이라도 민간 단체에 제공하도록 해야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나눔과행복은 주민들의 반발에 밀려 금곡동의 입소시설 매각에 나섰는데 매각에 실패하면, 내년부터는 입소시설을 그대로 운영하겠다는 입장이다. 인구 342만명이 거주하는 부산에 입소시설은 지난해 말 기준 2곳뿐이고 정원은 19명에 불과하다.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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