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기술 한국] 부처별 방지 대책 통합, 컨트롤타워 필요 
게티이미지뱅크

선박 엔진부품 생산업체를 운영하던 A(45)씨는 2011년 현대중공업과 납품계약을 맺었다. 현대중공업이 독자 개발한 중형 선박용 디젤엔진인 ‘힘센엔진’의 성능을 높이기 위해 시험 부품을 공급하기로 한 것이다. 이에 현대중공업은 A씨에게 힘센엔진 부품 설계도면 사본 912장을 전달했다. 시험 부품 개발이 끝나면 폐기해야 한다는 조건도 걸었다.

그런데 A씨 업체가 제작한 부품은 성능 불량 판정을 받았고 계약은 종료됐다. A씨는 현대중공업에 “설계도면을 파기했다”고 말했지만 거짓이었다. 그는 컴퓨터에 저장해 둔 힘센엔진 부품 설계도면을 이용, ‘짝퉁’ 부품을 만들어 팔다가 덜미를 잡혔다. 힘센엔진은 현대중공업이 1,100억원을 투자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독자 개발한 엔진으로, 조선업 분야에서 지정된 7가지 국가핵심기술 중 하나다. 그렇게 중요한 기술의 도면을 빼돌려 ‘산업기술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기소된 A씨에게 법원은 징역 1년6개월, 법인 벌금 5,000만원을 선고하는데 그쳤다.

기술유출 사범에 대한 기소율(7%)도 다른 형사사건의 평균 기소율(21%)보다 현저히 낮다. 목성호 특허청 산업재산보호협력국장은 “피해기업에 손해를 가할 목적이 있었다거나 부정 이익을 얻으려 했다는 걸 입증하기가 까다롭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2015~2017년 검찰이 기소한 기술유출 사건 103건 중 실형을 선고 받은 건 3건(2.9%)에 불과하다. 집행유예(56건)와 벌금(36건)이 전체의 89%를 차지했다.

최근 5년 산업기술 및 영업비밀 해외 유출 사건과 현황. 그래픽=강준구 기자

끊이지 않은 기술유출은 이 같은 솜방망이 처벌과 함께 기술유출방지 대책을 운영할 범부처 컨트롤타워의 부재, 기술유출 방지에 대한 인식 부족 등에 따른 결과라는 분석이다. 현재 법령은 일반 산업기술과 국가핵심기술 모두 해외 유출시 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억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500만 달러(약 59억2,000만원) 이하의 벌금 또는 20년 이하의 징역을 살도록 한 미국과 비교하면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특히 미국은 산업기술이 유출되지 않도록 국가산업보안프로그램(NISP)을 1993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기술유출 예방 대책 수립부터 대응까지 유기적으로 협력하기 위해 미국 에너지부와 연방수사국(FBI), 원자력 규제위원회 등 13개 기관이 참여한다. 독일은 상공회의소 등 경제인 단체가 주축이 돼 연방산업보안협회(ASW)를 운영하고 있다. ASW가 경제기밀을 위한 지침서를 만드는 등 산업기술 유출 방지 대책을 만들면 독일연방 경제기술부에서 이행 실태를 점검하는 식이다.

그런데 한국의 기술유출 방지 대책은 부처별 칸막이에 갇혀 있다. 장항배 중앙대 산업보안학과 교수는 “기술 유형에 따라 중소기업 기술은 중소벤처기업부, 방산기술은 방위사업청, 영업비밀은 특허청, 국가핵심기술은 산업통상자원부에서 관리한다”며 “효과적인 정책집행이 가능하도록 기술보호원(가칭)과 같은 컨트롤타워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2019년 세법개정안에서 기술유출 방지시설을 투자세액공제 적용대상에서 뺀 것도 기술보호에 대한 정부의 낮은 인식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간 기술유출 방지시설에 대해 대기업은 1%, 중견기업은 5%, 중소기업은 10%의 공제율을 적용받았지만 내년부턴 세액공제를 받을 수 없다.

국내 4년제 대학 가운데 산업보안학과가 있는 곳이 중앙대와 한세대뿐이어서 인력 육성에 한계가 있는데다, 연구개발(R&D)만 강조하는 정부 분위기도 기술유출이 계속 발생하는 원인으로 꼽힌다. 실제 산업부의 기술보호 관련 예산은 2015년 11억원에서 2016년 15억원으로 소폭 늘어난 뒤 2017년부터 3년째 12억원으로 제자리걸음이다. 올해 산업부의 산업기술 R&D 예산은 3조원이 넘는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류종은기자 rje312@hankookilbo.com

산업기술 유출 사건 유형. 그래픽=강준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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