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농협에 등록된 남편의 주거래 계좌에서 4억여원을 몰래 빼돌린 농협 직원에 대해 석연찮은 이유로 두 차례나 불기소 처분해 봐주기 논란이 일고 있다. 농협이 해당 금융거래의 불법성을 인정했는데도, 검찰은 “혐의가 없다”고 사건을 종결하면서다. 특히 남편이 금융재산 처리권한을 포괄 위임했다는 아내의 주장에 대해 법원은 근거가 없다고 판결했지만, 검찰은 정반대 결론을 내려 기판력(확정판결에 부여되는 구속력) 무시 시비까지 낳고 있다.
17일 검찰 등에 따르면 남광주농협 직원 A씨는 2017년 3월 23일 보습학원을 운영하는 남편 B씨의 주거래 계좌에서 출금전표를 작성하는 방식으로 동업자금 4억2,000만원을 수표(2장)로 인출했다가 1주일 뒤 새로 개설한 남편 명의의 6개월짜리 정기예금계좌 2개에 분산 입금했다. A씨는 같은 해 10월 12일 예금을 만기 해지한 뒤 B씨 명의로 신규 자유적립적금계좌를 만들어 3억원을 입금하고 1억2,000만원은 자신의 계좌로 넣었다. 이어 닷새 뒤엔 3억원이 든 적금계좌를 중도 해지해 1억5,500만원은 자신의 계좌로, 1억4,500만원은 자신의 동생 계좌로 각각 송금했다. 이 모든 과정은 A씨가 남편 몰래 진행했다. 이런 사실은 2017년 12월 B씨의 불륜을 의심한 A씨가 이혼소송을 내면서 알려졌다. B씨는 지난해 1월 A씨를 광주지검에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금융실명제법) 위반과 업무상 횡령 등 혐의로 고소했다.
그러나 검찰은 “A씨가 B씨의 묵시적 동의 아래 예금 해지를 한 것으로 인정된다”며 지난해 9월 A씨를 불기소 처분했다. 이에 B씨는 “동의한 적이 없다”고 항고해 올해 2월 광주고검으로부터 재기수사명령을 받아냈지만 재수사에 나선 광주지검의 결론은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검찰 수사 결과엔 납득하기 힘든 게 한두 개가 아니다. 먼저, A씨가 B씨의 동업자금 4억2,000만원을 무단 인출한 데 대해 농협이 금융실명제법 위반을 인정하고 B씨에게 돈을 되돌려줬는데도, 검찰은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무혐의 처분했다는 점이다. 농협은 2017년 12월 B씨에게 돈을 돌려주면서 A씨가 B씨 몰래 돈을 인출할 당시 작성했던 예금 해지 전표에 ‘실명법 위반에 의한 예금주 명의 복구를 위한 취소’라는 문구를 기재했고, A씨는 여기에 확인 도장까지 찍었다. 증거가 부족하다는 검찰의 판단이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B씨에게서 금융거래에 대한 포괄적 권한을 위임 받았다”는 A씨의 주장을 놓고서도 법원은 ‘이유 없다’고 판결했지만 검찰은 “이 판결문을 A씨의 범죄사실(해지 전표 위조ㆍ작성)에 대한 입증자료로 보기 어렵다”고 봤다. 앞서 B씨는 A씨가 2017년 8월에도 같은 수법으로 주거래 계좌에서 5,000만원을 무단 인출한 사실을 추가 확인하고 농협을 상대로 예금반환청구소송을 냈고, 지난해 10월 법원은 “A씨에게 출금거래 대리권한이 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B씨의 손을 들어줬다. 이후 농협 측이 항소를 하지 않아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그런데도 검찰은 지난 6월 “민법상 대리권 문제와는 별개로 판단된다”며 A씨에 대해 또다시 무혐의 처분했다.
검찰은 또 B씨가 지난 5월 “농협이 A씨 등의 금융거래기록을 조작ㆍ삭제했다”며 수사를 요청해 왔지만 묵살했다. 실제 A씨가 2017년 10월 12일 만기 해지한 B씨의 예금(4억2,000만원)을 B씨 명의 자유적립적금 계좌와 자신의 계좌로 각각 3억원과 1억2,000만원을 입금할 때 작성한 전표는 있지만 농협 측이 이혼 법정에 제출한 금융전산기록엔 해당 거래내역이 누락됐다. 또 A씨가 B씨 명의 자유적립적금(3억원)을 해지하고 이 중 1억5,500만원을 전표 입금을 통해 자신의 계좌로 이체했지만 이 역시 금융전산기록엔 없었다.
검찰 관계자는 “사건 관계에 대해선 사건 관계인들의 반발이 심해 자세히 말하기는 그렇다”며 “일단 재수사 명령 내용을 조사해 불기소 처분한 것이기 때문에 이의가 있으면 재정신청이나 재항고 등 불복절차를 밟으면 된다”고 말했다.
광주=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