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라건 올림픽을 유치하는 과정에서 일정 부분 정치성을 띠는 것이 흔하지만 2020 도쿄올림픽만큼 시종일관 정치색이 짙게 드러난 사례는 흔치 않을 듯싶다.
도쿄올림픽 유치 역사는 작가 출신이자 대표적인 극우 인사인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전 도쿄도지사를 빼놓고는 이야기 할 수 없다. 그는 버블경제 이후 침체된 일본 사회에 과거 군국주의 시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수단으로 올림픽을 선택했다. 하지만 2차례(2012ㆍ2016년) 연거푸 유치에 실패하면서 동력을 잃었다.
동력상실의 배경은 여럿 있다. 정치보다는 경제에 훨씬 관심이 많은 일본 국민으로서는 이미 하계(도쿄)와 동계(삿포로, 나가노) 등 3차례나 대회를 치른 경험이 있어 더 이상 큰 관심이 되지 못했다. 특히 적자 올림픽의 대명사로 낙인찍인 나가노 올림픽의 경우 해당 지자체가 빚더미에 허덕이게 됐고, 더 이상 올림픽은 돈이 되는 대회가 아님을 깨달았다. 부자 도시 도쿄가 풍부한 경기 인프라를 갖췄음에도 번번히 올림픽 유치 도시로 선택 받지 못한 가장 큰 이유도 국민들의 무관심이었다.
이런 분위기가 확산되자 이시하라 전 지사는 기발한 승부수를 띄웠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일본 선수들이 획득한 메달수가 38개(금 7, 은 14, 동 17)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며, 도쿄의 번화가 긴자에서 대규모 카퍼레이드를 열었다. 당초 목표로 잡았던 금메달 15개의 절반에도 못 미쳤고, 남자 유도 사상 첫 ‘노 금메달’ 수모까지 겪었지만 평소 흔하지 않은 이벤트에 50만명이 몰리면서 전세를 일거에 뒤집었다. 꺼져가던 올림픽 유치 열기도 겨우 되살렸다.
이런 열기에 가세한 이는 그 해 말 정권을 잡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다. 도호쿠 대지진과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로 실의에 빠진 일본 사회에 올림픽 유치를 통한 분위기 쇄신을 시도했다. 의도는 그렇다 치고 과정은 순수하지 못했다. 2013년 9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IOC총회에서 아베 총리는 당시 국제 사회의 관심사로 떠오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문제를 두고 “상황은 완전히 통제되고 있다”는 거짓 발언으로 논란을 자초했다.
우여곡절 끝에 올림픽 개최지가 되었지만 6년이 지난 지금 후쿠시마 제1원전의 상황은 어떤가. 일본 정부는 오염수 통제는커녕 더 이상 보관할 공간이 부족해 해양에다 버려야 한다며 생떼를 쓰고 있다. 그린피스가 이 문제를 공론화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의제로 다뤄지고 있지만 일본은 오염수에 포함된 세슘 농도가 낮아 국제 사회가 우려할 수준이 아니라며 방출 당위성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발암과 기형 유발 우려가 있는 삼중수소의 처리에 대해서는 입을 닫고 있다. 통제불능에 직면한 상황이지만 아베 총리는 여전히 현실을 외면한 채 후쿠시마 부흥올림픽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돌이켜 보건대 도쿄에서 200㎞이상 떨어진 후쿠시마를 올림픽으로 연결하려는 시도 자체가 잘못이다. 지금도 오염수가 넘쳐나고 있고, 완전한 폐로(廢爐)까지 앞으로 몇 십년이 소요될 지 모르는 상황이다. 후쿠시마에서 개최 예정인 야구와 소프트볼 선수들이 이런 불안을 안고 제 역량을 발휘하기를 기대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인지 따져봐야 할 일이다. 차라리 훗날 부흥이 완료된 뒤 후쿠시마 올림픽을 재차 유치했더라면 훨씬 더 공감을 받지 않았을까 싶다.
새삼스러운 이야기도 아니지만 올림픽 개최는 해당 국가의 영예라기 보다는 도시의 영예다. 올림픽 명칭 앞에 늘 도시가 붙는 것도 그런 이유다. 이는 특정 국가가 올림픽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의도를 막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지금이라도 제 길에서 벗어나 산으로 가고 있는 도쿄올림픽을 정상화하려면 아베 총리와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를 내려놓아야 한다. 이왕 그 곳에서 치러지는 경기는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후쿠시마의 쌀과 식재료를 선수들에게 공급하겠다는 발상은 당장이라도 거둬들이고, 해당 지역의 방사능 관련 정보도 숨김없이 공개해야 한다. “혹시라도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의 방사능 관련 정보를 ‘통제’하고 있는 건 아닌지“라는 의구심을 떨쳐내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한창만 지역사회부장 cm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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