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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석학 칼럼] 목숨을 살리는 성교육의 힘

입력
2019.09.23 04:4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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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은 성교육이 난잡한 성 행위를 조장한다며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성교육이 난잡한 성 행위를 조장하고 10대 임신을 증가시킨다는 대중의 오해와는 달리, 더 나은 성 교육은 10대가 안전한 성관계를 갖게 할 확률을 높여 성 매개 감염과 임신율을 낮춘다. ©게티이미지뱅크
어른들은 성교육이 난잡한 성 행위를 조장한다며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성교육이 난잡한 성 행위를 조장하고 10대 임신을 증가시킨다는 대중의 오해와는 달리, 더 나은 성 교육은 10대가 안전한 성관계를 갖게 할 확률을 높여 성 매개 감염과 임신율을 낮춘다. ©게티이미지뱅크

스리랑카에서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재기 발랄했던 8학년 시절. 10대 초반 청소년이었던 나와 같은 반 친구들은 평생 처음 받는 성(性) 교육 수업을 몹시 고대하고 있었다. 성과 성적 취향에 대해선 아는 게 아무 것도 없었다. 성에 무지했던 만큼 호기심도 많았다. 그러나 처음 접한 성교육은 실망 그 자체였다. 몸의 비밀과 성적 취향에 대한 수 많은 궁금증에 대해 질문을 하고 그럴싸하게 믿을 만한 답변을 듣는 대신, 그저 책 하나 건네주고 몇 군데 읽어 보라고 한 것이 전부였다. 궁금한 것은 학생 스스로 알아서 나름대로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전 세계 수백만 명의 청소년들이 비슷한 경험을 하는데, 이런 식의 성교육은 대부분 심각한 역효과를 초래한다.

청소년들의 신체는 매우 빨리 성장한다. 성과 성적 취향에 대한 이해를 신체 발육 속도보다 더디게 방치하는 것은 아이에게 운전을 가르치지 않고 스포츠카를 사주는 것과 같이 무책임하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청소년들이 성 정보에 어두울수록 에이즈 바이러스를 포함한 성 매개 감염과 10대 임신의 위험이 높아진다. 10대 여성의 자녀 또는 두 사람 모두의 생명을 위태롭게 할 뿐만 아니라 여러 세대에 걸쳐 빈곤을 영속화할 수 있다.

성적으로 왕성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몸에 일어나는 변화를 이해하는 것은 건강과 행복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다. 그런데 세계 많은 지역의 10대 소녀들이 자기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른 채 월경을 시작하며 그로 인해 큰 수치심을 느끼고 있다. 건강을 보호할 준비가 전혀 안 된 열악한 상태에서 살고 있다.

이런 소녀들은 성 정보 부족에 더해 청결한 위생용품과 이를 사용할 개인적 공간이 없기 때문에 생리 중에는 학교를 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불결하다’는 이유로 생리 기간 동안 공공장소(종교적인 장소 포함) 출입을 막거나 심지어(극심한 기후에서도) 집 밖에서 생활하도록 강요하는 등의 문화적 금기는 이들이 느끼는 수치심과 건강 위험을 더욱 악화시킨다.

어른들은 성을 터부시하고 성에 대해 자세히 가르쳐주지 않으면서도, 청소년들이 충분한 성 지식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내린 결정을 비난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런 잘못된 결정으로 평생 고통을 받는 것은 대부분 젊은이들이다. 실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을 직접 경험했다. 우리 스스로 성과 성적 취향에 대해 알아내도록 방치된 같은 반 친구들 중 일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임신을 했고 학교를 떠나야 했다. 이후 가난에서 벗어날 기회를 전혀 갖지 못했다.

세계 각지의 학교에서 종합적인 성교육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흔히 어른들은 성교육이 난잡한 성 행위를 조장한다며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성교육이 난잡한 성 행위를 조장하고 10대 임신을 증가시킨다는 대중의 오해와는 달리, 더 나은 성 교육은 10대가 안전한 성관계를 갖게 할 확률을 높여 성 매개 감염과 임신율을 낮춘다. 이는 또한 건강에서의 성 평등과 빈곤 감소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혜택을 가져온다.

이런 성교육의 이점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25년 전,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렸던 세계인구개발회의 (International Conference on Population and DevelopmentㆍICPD)에서 179개국 정부는 청소년들이 ‘책임 있는’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ICPD의 행동계획에 따르면, 성과 성적 취향에 대한 교육은 엄마와 아기에게 매우 위험한 성 매개 감염과 원하지 않는 임신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는 데 중요하다.

ICPD 선언 이후 많은 진전이 있었지만 충분하다고 하기엔 아직 갈 길이 멀다. 성과 모자 보건에 관한 정보를 거의 얻을 수 없는 개발도상국에선 지금도 매일 18세 미만 소녀 2만여명이 출산을 하고 있다.

청소년들이 자신의 신체와 성에 대해 책임 있는 선택을 하게 하려면, 그들의 행위 주체성과 자율성을 존중하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10대에게 친근한 방법으로 종합적인 성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이는 가족이나 친구에게 들킬 걱정 없이 피임 약을 구하거나 성에 대해 질문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마련된다는 의미다. 바로 이것이 유엔인구기금의 새로운 청소년 전략인 ‘나의 몸, 나의 인생, 나의 세상’이 담고 있는 메시지다.

올해 11월 세계인구개발회의 25주년을 맞아 케냐 나이로비에서 ICPD 행동계획을 완전히 이행하는 데 필요한 정치적 의지와 재정적 자원을 동원하기 위한 고위급 회의가 열린다. 이번에야말로 전 세계 지도자들이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약속을 하기 바란다. 세계 모든 청소년들이 자신의 몸과 인생, 그리고 미래에 대해 충분한 지식을 갖고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도록 보장하겠다고.

자야트마 위크라마나야카 유엔 사무총장 청소년특사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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