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부터 이어진 정치인들의 삭발투쟁
한국당 ‘릴레이 삭발’ 이어질지도 주목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16일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에 항의하며 청와대 앞에서 ‘삭발’을 하기로 결정했다. 제1야당 대표로는 처음인 황 대표의 삭발투쟁에 과거 삭발로 결기를 드러냈던 정치인들도 재조명되고 있다. 주로 노동계에서 강력한 투쟁을 독려하기 위해 사용하는 투쟁 방식인 삭발은 정치권에서도 간간히 등장했다.
◇삭발 원조 정치인은 누구
정치권의 삭발 원조로는 박찬종 전 통일민주당 의원이 꼽힌다. 박 전 의원은 198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김대중 김영삼 두 후보의 단일화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한 뒤 삭발을 감행했다. 당시 같은 당 소장파 의원들이 집단 삭발을 할 계획이었으나, 박 전 의원은 “앞으로 할 일이 많을 테니 내가 대표로 하겠다”고 만류,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10분 만에 삭발을 마쳤다. 결국 단일화가 무산되고 노태우 전 대통령이 당선되자 박 전 의원은 탈당 후 무소속으로 나서 13~14대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됐다.
1997년 노동법 날치기 통과에 항의한 김성곤 전 국민회의 의원이나 1998년 나주시장 공천헌금 의혹에 연루, 선거법 위반으로 검찰 수사를 받았던 정호선 전 새정치국민회의 의원도 삭발로 항의 의사를 표시했다. 하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인물은 민주당의 설훈 의원이다. 지금도 더불어민주당 소속 현역 의원인 설 의원은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당 지도부가 정상적 판단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철회를 요구, 삭발과 함께 단식 농성에 들어간 바 있다.
◇집단 삭발까지 등장
2000년대 이후로는 주로 ‘집단 삭발’이 감행됐다. 2007년 김충환 신상진 이군현 의원 등 한나라당(자유한국당의 전신) 원내부대표 3명은 사학법 재개정을 요구하며 머리를 밀었고, 결국 당시 한나라당 뜻이 반영된 사학법 재개정안이 국회에서 합의 처리됐다. 이로부터 3년 후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던 세종시 수정안 철회를 요구한 당시 이상민 민주당 의원 등 충남에 지역구를 둔 5명 의원의 집단 삭발식도 뜻을 이뤘다. 같은 해 6월 세종시 수정안은 국회에서 부결됐다.
집단 삭발이 늘 효과를 거두는 것은 아니다. 2013년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을 앞두고 소속 의원 5명은 모두 삭발을 단행하고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했지만 끝내 당 해산을 막진 못했다.
◇야권 ‘릴레이 삭발’ 성공할까
최근 삭발투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정치집단은 바로 한국당이다. 올해 5월 한국당 김태흠 성일종 이장우 윤영석 의원과 이창수 충남도당위원장 등 5명이 국회 본청 앞에서 선거제 개편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검ㆍ경 수사권 조정안 등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처리 원천무효를 주장하며 삭발했다. 보좌관, 당원, 의원실 인턴 등이 이들의 머리를 깎아줬다.
이어 조 장관의 임명을 둘러싼 ‘조국사태’를 두고 이달 10일 이언주 무소속 의원이 국회에서 머리를 밀었다. 한국당 박인숙 의원도 다음날 삭발했다. 여기에 황 대표까지 삭발을 결정하면서 야권의 ‘릴레이 삭발’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관심이 모아진다. 박 의원의 삭발식을 지켜보던 황 대표는 당시 당 대표 차원에서 릴레이 삭발을 독려할 계획을 묻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강구하고 추진하겠다고”고 답한 바 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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