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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P로 모텔 신축” 배당금 돌려막기에 6800명 160억 피해

입력
2019.09.17 04:4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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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능범죄, 당신을 노린다] <14> 금융 규제 허점 노린 P2P투자 사기 

P2P 투자 사기 범죄 수법. 그래픽=송정근기자
P2P 투자 사기 범죄 수법. 그래픽=송정근기자

"연 이자만 19.9%야. 여섯 달 뒤엔 원금도 받을 수 있어."

30대 직장인 A씨는 지인이 들려준 ‘개인간(P2P) 투자’ 얘기에 귀가 솔깃했다. 재테크에 관심이 많았던 A씨는 그간 돈을 굴려볼 곳을 찾아 헤매었다. 주식 투자 등은 이미 몇 번의 실패를 거쳐 마이너스 수익률.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은행 이자 2%대인 시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차라리 뭔가 시도해보는 게 더 낫다고 믿었다.

P2P투자를 알아보니 그럴듯하게 보였다. 투자액을 모아 모텔 같은 상업시설을 짓는데, 급한 돈이 필요한 것이니 수익은 두둑히 보장해주고, 만에 하나 공사에 문제가 생겨도 땅을 담보로 해뒀으니 원금은 돌려받는다는 설명이었다. 투자자를 모으는 업체는 P2P 투자업계에서는 이미 유명한, 업계 3위 업체인 ‘빌리’라 했다. 당시 여러 신문과 방송에서는 P2P투자를 ‘혁신적인 핀테크(Finance+Tech)비즈니스’라 소개하고 있었다. A씨는 때마침 생긴 목돈 500만원을 넣었다.

빌리가 약속한 이자는 지급 석 달 만에 끊겼다. ‘건축 방법이 바뀌었다’는 등 공사가 지연될 수밖에 없는 온갖 이야기들이 다 나왔다. 이제야 되려나 기다리던 차에 빌리 대표가 검찰에 붙잡혔다는 뉴스가 나왔다. 부랴부랴 이리저리 방법을 알아봤지만 건진 돈은 원금의 절반 정도.

A씨가 놀란 건, 자기 같은 피해자가 수두룩하더라는 사실이었다. 자신의 투자액 500만원은 적은 축에 속했다.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을 투자한 이들도 부지기수였다. 빌리 사기 피해자는 무려 6,802명, 피해액은 162억원에 달했다.

 ◇“급전 빌려주고 높은 수익 얻고” P2P의 유혹 

P2P투자는 ‘Peer To Peer’ 방식의 투자를 말한다. 은행 같은 매개자 없이 대출자와 투자자를 직접 연결해준다는 점을 내세운다. 은행 같은 금융기관들의 까다로운 심사, 평가를 우회하기 위한 전략이다. 급하게 돈이 필요한데 대출을 받기 어려운 사람, 돈을 굴리면서 은행 같은 제도권 금융기관보다는 좀더 높은 수익률을 기대하는 사람, 양쪽을 만나게 해준다는 개념이다. 일종의 ‘직거래 장터’ 개념으로 돈이 필요한 사람의 의뢰를 받은 P2P 업체가 투자금, 이율, 상환일정 등을 공개한 뒤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처럼 돈을 모은다. P2P업체는 이 과정을 주관해 수수료를 받는다. 언뜻 잘만 운영되면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구조처럼 보였다.

하지만 빌리는 거짓말로 일관했다. 가령 2016년 8월 서울 관철동에 지을 모텔 신축비용으로 M사에 9억원을 대출해주는 상품을 소개했다. 빌리에 따르면, M사는 57억원을 들여 모텔 신축 부지를 구입해뒀고 빌리는 M사와 신탁계약을 맺은 신탁사로부터 15억6000만원 상당의 2순위 수익권증서를 발급받아 담보를 확보해뒀다. 투자금을 내면 연 15% 상당의 이자를 주고 8개월 뒤엔 원금을 상환한다고 밝혔다.

반응은 뜨거웠다. 투자 상품을 내놓은 지 이틀 만에 370명의 투자자를 모았다. 성공모델은 반복된다. 빌리는 관철동에 제2, 제3의 모텔 건설이 있다고 하면서 투자자를 더 끌어 모았다. 이렇게 해서 796명으로부터 20억원을 받아 챙겼다.

나중에 드러난 사실이었지만, M사는 관철동 모텔 부지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래서 M사는 빌리가 투자금을 모아오면, 건물을 짓는 데가 아니라 땅을 사는 데 쓸 계획이었다. 또 M사가 신탁사와 신탁계약을 맺었다는 것도 거짓말이었다. 신탁사에 확인해보니 신탁계약을 맺은 적도 없을뿐더러, 설사 맺는다 해도 빌리에게 2순위 수익권증서를 줄 생각도 없었다. 땅 살 돈도 부족했던 M사로선 빌리의 제안이 유혹적이었다.

빌리의 범죄는 이어졌다. 2017년 서울 돈의동에 들어설 호텔 신축을 위한 토지 매입자금과 공사비 등이 필요하다며 1,251명에게서 30억원의 투자금을 모았다. 이때도 △해당 토지에 대한 2순위 근저당권설정등기 △매월 연 18%에 해당하는 이자 지급 등과 같은 고정 레퍼토리들이 반복됐다. 이후 3년여간 빌리는 모텔, 호텔에 이어 오피스텔, 전원주택, 주유소 등을 짓는다며 계속 범행을 이어갔다.

정상적으로 원리금을 상환할 수 없는 구조인데 이런 방식의 사기를 계속 진행하려니 남은 방법은 기존 투자자 돈을 배당금이니 뭐니 하는 명목으로 새로운 투자자들에게 지급하는 돌려막기뿐이었다. 빌리의 P2P투자는 결국 ‘폰지사기’였다.

P2P 투자체크리스트. 그래픽=송정근기자
P2P 투자체크리스트. 그래픽=송정근기자

 ◇피해자들 ”남의 건물 보면서 괜히 흐뭇해했다” 

P2P피해자들 대부분은 소개하는 말만 듣고 투자했다. 빌리는 공사하는 업체에 대한 정보도 공개하지 않았다. 그 대신 꾸준히 공사 현장 사진을 보여줬다. 어쨌든 뭔가 지으려 했던 것은 사실이었기에 공사 현장 사진을 보면서 투자자들은 안심했다. A씨는 “인터넷 등을 통해 워낙 설명을 잘해둬서 사기일거라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며 “건물이 올라가는 걸 확인해볼 때마다 내가 투자한 상품도 점점 성장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여기에다 투자처가 부동산이라는 점도 한몫했다. 어쨌든 땅이 증발해버릴 리는 없다는 믿음을 악용한 것이다. 왜 약속대로 원리금 상환이 제때 되지 않느냐고 따지는 투자자들에겐 ‘채찍과 당근’을 병행했다. ‘개발업자 문제로 발생하는 위험은 오로지 투자자에게 귀속된다'고 뻔뻔하게 되받아치기도 하고, 투자자들의 불만이 고조되면 ‘투자 설명회’를 열어 “조금 더 기다리면 원리금을 받을 수 있다”고 달래기도 했다.

투자자 B씨는 “답답한 마음에 빌리가 개최한 간담회에 갔지만 ‘공사 상황이 어려워 당장 이자를 줄 수 없지만 6개월 뒤 준공만 되면 투자액을 돌려줄 수 있다’는 말만 반복해서 들었다”고 말했다. 투자자들로선 어쨌든 땅이 있고, 공사가 진행 중이니 나중에라도 어떻게 되겠지, 하는 심정으로 기다린 것이다.

이런 믿음은 참으로 허망한 것이었다. 돈의동 호텔 신축에 투자 사기를 당한 C씨는 "사기라는 기사를 보고서야 그 지역 토지의 등기부등본을 떼어 봤다"며 "등기부등본에는 빌리와 관련된 이름이 아예 없어서 너무 허탈했다"고 말했다.

 ◇제도 허점에 손놓은 금융당국 “감독 대상이 아냐” 

P2P 금융사기는, 피해자들의 잘못도 있지만 적절한 제재수단을 마련하지 못한 금융당국의 책임도 있다. 빌리 사건만 해도 피해자들은 금융감독원에 신고를 했지만 ‘P2P업체는 금융당국의 직접 감독 대상이 아니다’라는 답변만 받았다.

그럼에도 P2P 금융사기 문제가 계속 불거지자 금감원은 지난해 11월 실태 조사를 했다. P2P와 연계된 대부업체 178곳의 대출 취급실태를 점검한 결과, 20개사(11.2%)에서 사기와 횡령 혐의를 포착해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 빌리의 대표 주모(34)씨도 이때 검찰 수사를 받았고 횡령ㆍ배임ㆍ사기 등 혐의로 기소됐다. 주씨는 지난 7월 1심에서 8년형을 받았다.

문제의 핵심은 P2P투자가 자본시장법 규제를 받지 않는다는 데 있다. 보통 금융투자는 금융회사가 투자자로부터 받은 투자금을 금융회사의 계정과 분리된 별도의 계정에 보관하고 실제 투자처에만 이 돈이 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 모든 과정이 자본시장법의 규제 아래 놓여 있고 금융당국은 이를 감독한다. 하지만 P2P투자는 새로운 투자형태인 만큼 자본시장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 업체가 투자자를 속여도 금융당국이 딱히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러다 보니 P2P 대출 시장은 2016년 6,000억원에서 지난 7월 4조5,000억원으로 3년만에 7배 이상 성장하면서 덩치를 불렸지만, 속은 부실하다. 금감원 조사 결과 P2P 연계 대부업체들의 평균 임직원 수는 3.6명에 불과했다. 2인 이하로 운영되는 업체도 절반이 넘었다. P2P 투자업체도 평균 임직원수가 6.2명이었으며, 투자 심사 인력 수는 2.9명에 불과했다. 투자 심사 담당자가 1명인 회사도 많았다.

이런 지적 때문에 2017년 7월부터 ‘P2P투자법’이 국회에서 발의됐으나 지난 달에서야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소위원회를 통과했다. P2P 업체의 최소 자기자본금을 현행 3억원에서 5억원으로 높이고, 금융사의 P2P대출 투자를 일부 허용해 P2P 상품의 신뢰도를 높인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2년 만에야 P2P 금융 법제화의 첫 단추가 채워진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시간이 더디다. 빌리 같은 P2P 투자사기는 여전하다. P2P 투자 피해자 모임을 만든 네이버 카페만 10여곳에 이른다. 연체된 투자금을 떼일까봐 이런 모임을 만들거나, 회사를 고소하지도 못한 채 속으로만 끙끙 앓고 있는 이들은 더 많다.

빌리 사건 피해자들을 대리하는 법무법인 태율의 이상현 변호사는 “빌리 소유 재산을 가압류해둔 상황이지만, 사기 피해액을 되돌려 받을 수 있는 확률은 낮은 게 현실적인 지금의 상황”이라며 “다른 P2P 업체에 대한 사기 피해로 소송 문의가 들어오고 있는 만큼 법제화가 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안하늘 기자 ahn708@hankookilbo.com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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