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 ‘단체행동 금지, 합의 누설 시 2배 배상’ 합의서 요구
한 대형 건설사가 대구 북구 고성동에서 재개발 공사 중 인근 주택가에 균열과 누수 등 피해(2017년 12월8일 12면)를 입혔으나 2년이 다 되도록 모르쇠로 일관해 주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관할 북구청은 당시 피해실태를 파악한 후 “행정조치와 과태료 처분을 하겠다”고 했으나 이마저 흐지부지되면서 수수방관하고 있다.
2017년 9월 착공해 내년 3월까지 지하 2층 지상 29층 682세대 규모로 건설 중인 이 아파트 인근 인근 주택가를 둘러본 결과 2017년 말 아파트 공사현장의 진동 때문에 균열과 누수 현상이 생긴 주택 내부는 2년 전이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한 집에는 문틀과 벽 상단부 모서리에 여전히 큰 균열이 보였고, 갈라진 틈으로는 살짝 충격만 가도 흙가루가 떨어졌다. 빗물이 샌다는 벽지에는 곰팡이가 번져있었고, 주방 바닥은 탁구공이 저절로 싱크대 밑으로 굴러갈 정도로 기울어져 있었다.
또 다른 주택은 시멘트로 된 마당에 금이 가서 비만 오면 흙탕물이 올라왔다. 공사 현장 옆에서 PC방을 운영했던 30대 남성은 “2년 전 벽에 금이 가고 컴퓨터도 떨어진데다 소음이 워낙 커서 손님이 다 사라졌다”며 “결국 PC방을 폐업하게 됐는데도 건설사는 얼굴 한 번 비치지 않았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 공사 현장 인근 주택에서는 벽이 갈라지거나 싱크대와 타일 바닥이 뒤틀린 경우가 숱하게 발견됐지만 해당 건설사는 보수는커녕 보상조차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한 주민은 “7월쯤 아파트 외벽 도색 작업을 했을 때는 인근 주택가의 주차 차량에 도료가 잔뜩 묻어 항의했더니 자신들의 책임이 아니라고 잡아 떼기도 했다”며 “주택가 주민들이 같은 도료인 것을 증명한 뒤에야 인부들이 수건을 들고 차량을 닦아 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건설사 측은 또 주민들에게 ‘단체행동 금지, 합의 누설 때 2배 배상’ 내용을 담은 합의서를 주민에게 종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합의서에는 ‘공사 진동으로 인한 주택의 일부 수리 비용과 정신적 스트레스 완화를 위한 약제비, 정신적 물적 보상금을 수령한다. 그 후 주민 선동금지, 합의 사실이나 합의 금액을 누설할 경우 2배 배상 및 법적 책임을 진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주택 세입자에 대한 대책은 전혀 없었고, 피해를 입은 주민들도 대부분 합의를 하지 않았다. 지난 6일 피해주민 간담회에 참석한 안경완 북구의원은 “아파트 인근 주택가에 노인들이 많이 살고 있어 공사 피해를 제대로 알리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민원이 해결될 때까지 주민 목소리를 대변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해당 건설사 측은 “인근 주택가의 피해 명세서를 받지 못해 보수를 하지 못했다”며 궁색한 변명을 내놨다. 북구청도 잇딴 주민들의 민원에 대해 “확인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김민규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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