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 동안 전쟁의 포화에 시달린 이라크가 최근에는 메스암페타민, 일명 필로폰 중독과 씨름하고 있다. 이라크는 지난 2003년 미국의 침공으로 시작된 이라크전 이후에도 잇따른 종파 간 내전과 이슬람국가(IS)의 공격으로 고통받아 왔다. 2017년 전후로 전쟁에서 벗어나는 줄 알았지만, 계속되는 치안 불안과 실업 등 사회 혼란이 이라크에 ‘마약 중독’이라는 새로운 재앙을 퍼뜨리고 있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14일(현지시간) ‘이라크는 새로운 역경, 크리스털 메스(Crystal meth)에 직면했다’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최근 급증한 마약 중독 문제는, 2003년 이후 수년간 이라크의 사회 질서가 어떻게 흐트러져 왔는지 보여주는 최신 징후”라고 진단했다. 크리스털 메스는 필로폰의 또 다른 이름이다. 특히 수도 바그다드와 제3도시 바스라의 상황이 심각한데, 지난 한 해 동안만 해도 바스라시가 속한 바스라주(州)에서 1,400여명의 마약 사범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유엔 마약범죄국에 따르면 7년 전만 해도 이라크는 중동 지역 마약 네트워크의 ‘환승 국가’였다. 생산지도 소비지도 아닌 경유지에 불과했다는 것. 그러나 경찰ㆍ유엔 전문가에 따르면 이제는 이라크에서도 마약 원재료가 재배되고, 제조실도 생겨나는 추세다. 더군다나 복수의 마약 사범들은 시아파 민병대(PMU)에 속한 일부 무장단체들까지 마약 밀수범과 협력하고 있으며, 정부와의 연줄도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고 NYT는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NYT는 이미 미국의 사담 후세인 축출 이후부터 현지 치안이 무너지면서, 각종 범죄가 늘어왔으며 마약 중독은 이런 추세의 최신 단계일 따름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원유 생산지인 바스라에서 당국 통제력이 상실되면서, 각종 종교ㆍ부족 무장단체들이 자원을 장악하기 위해 난립했고 범죄가 들끓었다. 이런 상황에서 효과적인 마약범죄 단속이 이뤄지기는커녕, 돈을 벌기 위해 범죄 조직에 가담하는 민병대들도 나타났다는 것이다.
특히 마약 중독은 일부 범죄 조직을 넘어 사회적 빈곤ㆍ실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바스라 지역 항소법원은 자체 연구를 통해, 마약 범죄로 체포된 이들 중 최소 90%가 실업자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실업이 마약 사용을 부추기는 한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반대로 남성 가장이 마약에 빠지면서 가족 전체가 경제적 파탄에 몰리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마약 사범으로 한 번 낙인이 찍히면 재취업이 어려운 것은 당연지사다.
그러나 이라크 당국은 치안 불안이나 실업 같은 문제의 근원을 살피기보다 범죄자 체포ㆍ수감이라는 표면적인 대처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NYT는 꼬집었다. 독실한 이슬람교도들은 마약 사용을 “한 가족을 넘어 사회를 타락시키는 수치스러운 일”로 간주하는 탓에 정부도 범죄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NYT는 당국이 재활 치료 등 사후 대처 방안에 대한 계획이 없이 마구잡이로 마약 사범들만 잡아들이는 탓에, 포화상태가 된 수감시설만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