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과는 막노동이나 마찬가지예요. 매일 핏물과 오물을 뒤집어 써가며 일합니다. 피가 인체 무게의 5%만큼 채워져 있는데 여기에서 절반만 모자라도 환자가 목숨을 잃게 돼요. 외과의사는 입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온종일 서서 손으로 수술을 해야 합니다. 수술을 마치면 진이 빠질 정도로 체력적인 부담도 큽니다. 평균 수명도 짧습니다. 밤에는 또 어떤가요. 남들은 퇴근한 시간에 야간 응급수술을 할 때가 많습니다.”
이국종 아주대병원 외상외과 교수가 한 강연에서 외과의사의 고충을 이렇게 토로했다. 그는 “다시는 외과의사를 하고 싶지 않다”며 “학생 시절로 돌아간다면 의대 자체를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한때 ‘의사의 꽃’이라는 의과의사를 이젠 의대생들이 기피하고 있다. 밤낮으로 장시간의 고난이도 응급 수술이 잦아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은 남의 얘기다. 게다가 의료소송 등 각종 분쟁에 휘말릴 위험이 높고, 쌍꺼풀 수술보다 충수돌기염(맹장염) 수술비가 훨씬 쌀 정도로 외과 수술 수가도 턱없이 낮은 탓이다. 이 때문에 실력을 갖춘 외과 전문의 가운데 메스를 놓고 개원해 감기 환자를 보는 이도 적지 않다. 대형 병원에서 수술하는 것보다 삶의 질은 훨씬 높고 수입엔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의대생들의 외과 기피 현상은 벌써 20년 가까이 됐다. 외과 전공의(레지던트) 지원자는 2000년대 초반 271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계속 감소, 지난해는 140명으로 거의 반토막이 됐다. 외과 전공의 수련과정을 4년에서 3년으로 줄인 ‘외과 전공의 3년제’가 시작된 올해에도 147명에 불과했다.
최근 5년간(2014~18년) 외과 전공의 지원자는 929명으로 정원(1,243명) 대비 충원율이 74.7%에 불과했다. 외과 정원도 2009년 322명에서 올해 177명으로 10년 만에 절반이나 줄었다. 게다가 2017년부터 전공의 수련시간을 주 80시간으로 제한하면서 수술방의 일손은 더 부족해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세브란스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성모병원 등 소위 ‘빅5 병원’도 다른 지방 의대 출신을 외과 전공의로 뽑은 지 오래다.
이처럼 외과의사가 줄고 있는 반면 유병장수(有病長壽) 시대가 되면서 각종 외과 수술은 급격히 늘고 있다. 예전에는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수술을 기피했던 고령인들이 이젠 80세가 넘어도 거뜬히 수술을 받는다. 이 때문에 외과의사들은 수술하느라 하루 종일 수술실에 매여 있어야 하는 지경이다. 수술 후 입원 중인 환자도 자신을 수술한 의사 얼굴조차 보지 못하고 퇴원하는 일이 빈번해지면서 ‘외과 병동은 무의촌’이라는 우스개까지 생겼다.
현재 수술을 집도하고 있는 외과 전문의들의 고령화도 큰 문제다. 현재 전체 외과 전문의 8,229명(2017년 기준) 가운데 50대 이상이 4,554명(54.9%)으로 절반을 넘었다. 이들이 차례로 은퇴하면서 외과의사가 없어 수술을 받지 못하는 ‘수술 절벽’은 10년 안에 현실화할 것이다. 이미 일부 지방 병원에서는 수술할 의사가 없어 의료공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2026년에는 서울에도 수술 절벽이 닥칠 것으로 예상된다.
보건복지부가 뒤늦게 외과 기피 현상을 개선하려고 2009년부터 외과 수술의 의료 수가(酬價) 인상, 외과 전공의 3년제 시행, 입원 전담 전문의 신설 등 애를 쓰고 있다. 하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하다. 대한외과학회가 분석한 2017년 기준 국내 외과 수술 평균 수가는 미국의 18.2% 일본의 29.6% 수준이다. 같은 수술을 해도 미국 외과 의사가 100만원 받을 때 한국에서는 18만2,000원 밖에 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마음 떠난 의대생들이 외과를 택할 수 있는 확실한 유인책이 절실하다. ‘독수리의 눈(eagle’s eye), 사자의 심장(lion’s heart), 여인의 손(lady’s hand)’을 갖춰야 한다는 외과의사가 모자라서 외국에서 수입해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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