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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소미아 종료, 전작권 환수... 진통 겪는 ‘자주파’ 대미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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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소미아 종료, 전작권 환수... 진통 겪는 ‘자주파’ 대미 외교

입력
2019.09.14 20:00
수정
2019.09.14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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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일 관계에도 민족주의적 시각… 국내정치용에 일관성 없다는 반론도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일 청와대 본관에서 국민과 해외동포에게 추석 명절 인사를 전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일 청와대 본관에서 국민과 해외동포에게 추석 명절 인사를 전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아무리 동맹관계여도 국익에 우선할 수는 없다.”

아무리 대일(對日) 압박 카드여도 한미일 삼각 안보 공조 체제의 초석 격인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을 연장하지 않으면 유일한 우리 동맹국인 미국이 언짢아하지 않겠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자 정부가 내놓은 입장이다. 지난달 협정 연장 종료 결정 당시 청와대 관계자는 “미국은 미국의 입장에서 자국 시선으로 사안을 바라볼 것이고, 한국도 마찬가지다. 각 나라는 자국의 이익 앞에 최선을 다한다”고 말했다. 한일 지소미아 종료를 결정하며 정부가 천명한 ‘국익을 외교 정책의 최우선으로 삼겠다’는 원칙이 일본뿐 아니라 미국과의 관계에서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집권한 지 2년이 넘어가면서 문재인 정부 외교의 정체성이 뚜렷해지고 있다. 특히 잡음을 감내하며 동맹인 한미관계의 재조정을 시도하면서다. 한일 지소미아 종료 결정 이후 미 정부가 노골적인 실망을 드러내는 과정에서 빚어진 양국 간 갈등이 대표적 진통이다. ‘자주파’ 외교 노선이 한층 분명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른바 ‘자주파’와 ‘(한미)동맹파’에 대한 정의나 해석이 일치하지는 않지만, 현 정부의 외교에서 자주파의 면모가 두드러진다는 건 전문가들의 이구동성이다. 남북관계를 중시하고 주변 강대국들과의 관계 재정립을 시도한다는 측면에서다. 동맹은 그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한반도의 번영을 위한 수단이며, 따라서 필요한 경우 동맹국인 미국을 상대로도 당당하게 목소리 내기를 주저해서는 안 된다고 여기는 게 자주파 정체성의 특징이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강대국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대통령은 미ㆍ중ㆍ일ㆍ러 주변 4국과의 ‘당당한 협력 외교’를 국정 과제 중 하나로 꼽기도 했다.

문 대통령 임기 내에 현재 주한미군이 갖고 있는 전시작전통제권을 돌려받으려고 알력을 감수하며 정부가 서두르고 있는 것도 자주파 외교의 일환이다. 문 정부의 2019년 전년비 국방비 증액률 8.2%는 이명박ㆍ박근혜 정부 당시의 2배가량인데, 상당 부분이 미국산 무기 도입 비용인 국방비의 확대는 남북 정상이 합의한 ‘단계적 군축 추진’과도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되지만, ‘자주 국방’ 실현이 목표인 현 정부는 아랑곳없이 밀어붙인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체결 이래 약 반세기 만의 대법원 징용 배상 판결에 따른 대일 마찰에도 현 정부에 선명한 민족주의적 자주파 시각의 영향이 적지 않다는 게 외교가의 대체적 분석이다. 지난달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 배제 조치 이후 열린 긴급 국무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이번 일을 냉정하게 우리를 돌아보고 대한민국을 새롭게 도약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일본의 무역 보복을 극복하는 데만 그치지 않고, 일본 경제를 넘어설 더 큰 안목과 비상한 각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는데, 이 ‘극일’ 메시지의 기저에 깔린 정서가 바로 민족주의라는 것이다.

외교가에 따르면 자주파 외교의 핵심 명분은 사대주의 강대국 외교의 극복이다. 국익 강조라는 현실주의ㆍ실용주의 원칙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앞장서 세계적 유행으로 만들고 있는 ‘자국 우선주의’와 조응하는 측면이 있다. ‘북중러 대 한미일’이라는 전후 냉전 질서의 해체는 한미동맹은 유지하되 한미일 삼각 군사동맹에는 편입되지 않겠다는 자주 외교 원칙의 부수 효과라 할 수 있다. 미국은 궁극적으로 패권 경쟁국인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미일 군사동맹을 강조하지만,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진전시켜야 할 문 정부로서는 신(新)냉전을 불러올 대립 구조의 한복판에 들어서는 걸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현 정부가 자주 외교에 무게를 두는 건 역대 정부 중 가장 강력하게 자주를 말했던 노무현 정부를 계승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적지 않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 당시 핵심 인사들은 “전작권 전환의 목표는 한미동맹 비대칭성의 극복”이라며 뚜렷한 자주 노선을 제시한 바 있다. 노 정부 때에 비해 특히 미국을 향해서는 거친 표현을 자제해 왔지만, 동맹파와의 갈등도 없을 정도로 외교안보 진용이 더 자주파 일색인 게 현 정부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자주파 외교를 대표하는 정부 당국자로 가장 자주 지목되는 인물이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제2차장이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실제로는 특정 이념에 경도된 전략가라기보다 통상ㆍ교섭 전문가일 뿐이라는 것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14일 “김 차장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에서 성과를 냈던 인사로 자주파로 보기는 어렵다”며 “미국으로부터의 독립, 일본으로부터의 탈피 같은 관념으로 전략적으로 접근한다기보다는 통상의 시각에서 사안을 보는 듯하다”고 말했다.

때문에 자주파 외교는 국내 정치 요소를 고려한 정책에 불과하고 그래서 일관적이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동북아시아에서의 한국 역할 재정립과 신남방 정책 등 문 대통령의 외교 다변화 시도의 성공 여부에 따라 자주파 외교 역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게 외교가의 중론이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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