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임시장 때 주민공청회 거쳐 결정…구미시, 민원 이유로 지명으로 바꿔

경북 구미시가 지역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 왕산 허위 선생을 기리기 위해 만든 광장과 누각의 명칭을 뒤늦게 동네 이름으로 바꿔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수자원공사는 최근 구미시 산동면 국가4산업단지 확장단지 내 3만㎡ 규모로 56억원을 들여 10호 근린공원을 조성했다. 당초 수자원공사는 공원의 이름을 물빛공원으로, 공원 내 8,000㎡ 규모 광장을 ‘왕산광장’이라 명명하고 왕산가문이 배출한 독립운동가 14인의 동상을 전시하기로 했다. 왕산은 독립운동가 허위 선생의 호다. 또 100여 명이 동시에 들어갈 수 있는 가로 17.7m 높이 10.5m 규모 전통 누각을 만들기로 하고 이름을 ‘왕산루’로 결정했다.
구미시와 수자원공사는 공원을 조성한 후 광장과 누각의 이름을 공원이 위치한 산동면의 지명을 따 각각 ’산동광장’과 ‘산동루’로 붙였다. 이들 시설이 들어선 마을인 산동 주민들의 요구 때문이라는 게 두 기관의 설명이다.

이러한 해명에도 명칭을 둘러싼 논란은 확대되고 있다. 구미시와 수자원공사는 왕산광장과 왕산루를 정할 때 주민공청회를 거쳐 결정했지만, 산동광장과 산동루로 각각 명칭을 변경할 때는 이같은 절차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장세용 시장의 뜻에 따라 명칭이 변경된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장세용 현 시장은 취임 이후 “인물 기념사업을 태생지 중심으로 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왕산 허위 선생이 태어난 곳은 경북 선산군 구미면 임은리로, 지금의 구미시 임은동이다.
광장과 누각의 명칭이 바뀌자 왕산 허위 선생의 후손은 물론 지역 시민ㆍ사회단체는 강한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사)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는 최근 성명서를 내고 “물빛공원에 왕산 허위 선생을 기리는 장소를 조성하는 것은 전임 시장 시절 주민공청회를 통해 확정한 사안이다”며 “전체 시민 여론을 수렴하지 않고 임의로 변경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조근래 구미경실련 사무국장도 “독립운동가의 명칭을 지우면서 유족의 의견까지 묵살하고 있다”며 “고의적으로 구미시가 여론을 무시하고 일방통행식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왕산 허위의 친손자인 허경성(93)씨 부부와 자녀들은 지난달 말 구미에 있는 왕산의 묘를 찾은 뒤 명칭이 바뀐 것에 섭섭함을 감추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구미시 관계자는 “물빛공원 내 시설물들의 이름은 인근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해 결정했다”며 “왕산 허위 가문의 14인 동상은 임은동에 있는 왕산기념관으로 옮겨 전시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김재현기자 k-jeah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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