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정민은 수년간 월간지에 칼럼을 연재하고 ‘쓸 만한 인간’이라는 에세이를 펴낸 작가이기도 하다. 책을 좋아하는 그는 얼마 전 서울 상수동 인근에 작은 책방도 열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아유, 섹시하다니요. 쑥스러워 죽겠어요.” 영화 ‘타짜: 원 아이드 잭’(타짜3)을 관람한 관객들에게서 들려 온 호평을 전해 주자 배우 박정민(32)이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이럴 때 사용하라고 영화사가 알려 준 모범 답안으로 대신해도 될까요. ‘감사합니다, 하하’.” 환기 삼아 주고받은 시시한 농담에서도 박정민이라는 사람이 보인다. 마음에 없는 허튼 말은 하지 않고, 가벼운 칭찬도 무거운 책임으로 받아들이며, 자기 자신에게 가혹하리만치 엄격한 사람.

‘타짜3’가 그에게 맡겨진 것도 그런 이유일 게다. 2006년 ‘타짜’와 2014년 ‘타짜-신의 손’으로 이어진 충무로 대표 흥행 시리즈. 그래서 배우에겐 독이 든 성배, 잘해야 본전치기라는 걸 잘 알지만, 박정민은 제작진의 믿음과 기대에 기꺼이 베팅했다. 최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마주한 박정민은 “생각이 많아 보여도 결정은 직관적으로 하는 편”이라며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부터 출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주변에선 모두가 그를 뜯어말렸다. 하지만 좀처럼 마음이 접히지 않았다. “어느 순간 돌아보니 출연을 만류하는 의견에 제가 일일이 반박하고 있더라고요. 포기할 수 없는 여러 이유를 각주로 붙이면서요. 그럴 거면 뭐 하러 물어보냐고 타박도 받았죠. 이미 마음의 결정은 했는데 저에게 확신을 주는 한마디 말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권오광 감독은 박정민이 2011년 독립영화 ‘파수꾼’으로 데뷔하기 이전 단편영화 출연 시절부터 그를 눈여겨봤다고 한다. 박정민은 “감독님이 아무도 모르는 내 과거 출연작까지 알고 있어서 큰 감동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영화 ‘타짜: 원 아이드 잭’에서 박정민은 짝귀의 아들이자 신출내기 타짜인 도일출을 연기한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박정민은 ‘타짜2’에 조연 역할로 오디션을 봤다가 떨어진 적이 있다. ‘타짜3’ 촬영 전까지도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참으로 공교롭다. 만약 오디션에 붙었다면 ‘3대 타짜’는 다른 배우에게 돌아갔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우연과 인연을 거듭하며 박정민은 신출내기 타짜 도일출로 다시 태어났다. 전설적인 타짜 짝귀(주진모)의 아들인 도일출은 겉보기엔 평범한 공시생이지만 사설 도박장에선 알아 주는 실력자다. 그러던 어느 날 도박판에서 속임수에 빠져 사채 빚을 진 도일출은 정체불명의 타짜 애꾸(류승범)에게서 도움을 받고, 애꾸가 설계한 작전에 합류하게 된다.

박정민은 카드 기술을 익히느라 7개월간 카드를 손에 쥐고 살았다. 일출의 변모를 표현하기 위해 체중도 20㎏ 뺐다. 영화의 시작과 끝을 비교하면 서로 다른 사람으로 보일 정도다. 시나리오의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모든 장면을 정리한 스토리보드도 직접 만들었다. 캐릭터를 완전히 이해하고 극을 이끌기 위한 노력이었다. “부담감과 책임감을 감내하겠다고 결심하고 시작한 일이지만, 막상 닥치고 보니 생각 이상으로 힘들었어요. 제가 주연으로 참여한 영화 중에선 촬영 횟수와 예산 규모가 가장 컸으니까요. 작품의 호흡이 길어졌으니 제 태도부터 달라져야 했어요.”

상업성 짙은 오락물이고 캐릭터도 다분히 영화적이지만, 도일출만은 현실에 발붙이고 있다. 일상성과 생활감이 실린 박정민 특유의 연기 덕분이다. 그는 “그동안 해 왔던 연기 방식에 의지하지 않으려 여러 시도를 했다”며 “그럼에도 기본적으로 꾸며진 연기에는 거부감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다 문득 뜻밖의 고백이 이어졌다. “개성이 독특한 캐릭터를 뻔뻔하리만치 매끈하게 표현해 내는 배우들이 부러울 때도 많다”는 얘기였다. “사실 저는 타고난 재능이 많은 편이 아니에요. 그래서 ‘타짜3’에 더 끌렸던 건지도 몰라요. 원래 재주가 많은 사람인 양 신나게 저 자신을 표현해도 되니까요. 물론 저도 하고 싶은 일은 꼭 해야 하는 사람이에요. 그 지점에선 일출과 맞닿아 있어요. 다만 저는 조심스럽게, 눈치도 좀 보면서, 남몰래 숨어서 하죠.”

신비로운 분위기를 지닌 류승범과 젊은 혈기로 충만한 박정민의 연기 호흡이 극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박정민은 이 영화에 캐스팅된 직후에 해외에 체류 중이던 류승범에게 손편지를 썼다.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당신이 출연한 ‘와이키키 브라더스’이고, 당신을 동경하면서 배우라는 꿈을 키운 한 후배가 영화를 찍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함께 연기하고 싶다”는 말은 전혀 담기지 않은, 순수한 팬레터였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나던 날, 류승범은 “네가 정민이구나”라면서 박정민을 꽉 안아 줬다. 촬영을 마치고 떠나기 전에도 따로 만나서 격려와 조언을 건넸다. “충분히 잘하고 있으니 너 자신을 학대하지 말고, 하기 싫은 일은 싫다고 말할 줄도 알아야 한다”라고. 박정민은 “그동안 타인에게 피해 주기 싫어서 과도할 정도로 말을 아꼈는데 그게 꼭 옳은 일만은 아니라는 걸 비소로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박정민은 2016년 영화 ‘동주’로 그 해 모든 영화상에서 신인남우상을 휩쓸며 충무로 대들보로 성장했다. 지난해 ‘그것만이 내 세상’과 ‘변산’에선 각각 자폐 장애 피아니스트와 흙수저 래퍼로 연기 변신을 보여 줬다. 올해 상반기엔 ‘사바하’로 관객을 만났다. 촬영을 마친 ‘사냥의 시간’과 ‘시동’도 출격 대기 중이고, 곧이어 촬영을 시작하는 신작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선 황정민, 이정재와 호흡을 맞춘다. 추석 연휴는 극장 무대 인사로 바쁘게 보낼 예정이다. “촬영장에선 배우를 배역 이름으로 불러요. 도일출이라 불렸던 시간들이 통째로 제 경험치가 된 기분이에요. 촬영을 가을 초입에 시작했거든요. 앞으로 가을만 되면 ‘타짜3’가 떠올라서 행복해질 것 같아요.”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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