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기술 한국] <상> 제조업 기술인력 고령화ㆍ공동화 상>
도금공장 근무 20대 산업기능요원 “노동강도 센데 임금 등 처우 열악”
입사 1년 이내 조기 퇴사율 41%… 중소기업 인력난, 대기업의 10배 수준
“직업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도금공장에서 산업기능요원으로 일하고 있는데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랑 시급(최저임금)이 같아요. 배달 기사(라이더)로 일하는 친구보단 벌이가 시원찮아요. 근무강도가 센 일이고 기술직이면 대우를 더 잘해줄 줄 알았는데, 싼 값에 부리는 인력일 뿐이죠. 대체복무 기간이 끝나면 미련 없이 그만둘 거예요.”
지난 9일 경기 안산시 단원구 도금단지의 A공장에서 만난 이정훈(가명ㆍ21)씨는 매일 아침 출근할 때마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직업계고 화학과에서 화학분석기능사 등의 자격증을 취득한 후 전공을 살려 도금공장에 취직해 기술을 익혔지만, 체감하는 노동 강도에 비해 처우가 열악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씨가 처음부터 일에 대한 애정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도금(표면처리)은 소재 및 부품 외관을 화학처리 등을 통해 금속이나 비금속으로 피막(皮膜)을 입혀 미관을 완성하고 내구성을 개선하는 기술이다. 휴대폰과 전자제품, 반도체, 자동차 부품 등을 생산할 때 꼭 필요한 공정이다. 이 때문에 이씨는 군대를 다녀오는 대신 산업기능요원으로 복무하며 도금기술을 익히고 경력을 쌓아 A공장에서 계속 근무하면 경쟁력이 있겠다는 생각에 자원했다.
그러나 이씨는 지난 3년간 A공장에서 일하면서 “마음이 떠났다”고 했다. 이씨는 “산업기능요원이어도 직무에 따라 급여가 달라지는데, 내가 일하는 곳은 최저임금만 준다”며 “회사에서 상여금을 지급한다고 약속해놓고 별다른 설명 없이 적게 줬는데, 대부분 50대 이상인 함께 일하는 분들이 ‘왜 너만 불만을 갖느냐’는 식이라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중소 제조업 특유의 주먹구구식 경영방식, 직장 내 세대ㆍ문화 차이, 기술인에 대한 차별적 대우와 인식 등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새로운 직업을 찾겠다는 이씨에게 ‘3년간 쌓은 경력이 아깝지 않느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기술인에 대한 대우는 어딜 가나 열악해요. 이직해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제조업의 근간을 이루는 뿌리산업(주조, 금형, 용접, 소성가공, 표면처리, 열처리)의 미래를 책임질 청년들이 일터를 떠나고 있다. 2030대 청년들이 중소 공장을 외면하면서 숙련공이 고령화된 뿌리산업 업체들의 인력난은 해묵은 문제다. 그러나 정부 지원 제도를 통해 뿌리산업에 진입한 청년들도 중도 이탈하는 실정이다. 최근 일본의 수출규제를 계기로 국내 소재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할 필요성이 커진 만큼, 소재산업의 기반이 되는 뿌리산업의 기술인력 양성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러시아 카잔에서 열린 제 45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서 우리나라가 종합 3위를 기록한 것은 위기에 처한 ‘기술한국’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1977년 제23회 대회에서 첫 종합 우승을 차지한 후 우리나라는 19차례나 1위를 달성했다. 1971년 20회 대회에서 4위를 차지한 이후 48년만에 가장 낮은 성적이다. 홍제용 한국산업인력공단 글로벌숙련기술진흥원장은 “우승을 한 중국은 선수 지도위원에게 월 300만원 가까운 지원을 하지만 우리는 그 6분의 1인(50만원) 수준으로 봉사정신을 요구한다”며 “선수들을 여러 기술강국에 전지훈련도 보내 실력을 쌓게 하는데 우리는 그런 지원이 없다”고 말했다.
◇젊은 기술인 찾기 힘든 산업현장
16일 산업통상자원부의 ‘2018년 산업기술인력 수급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7년 기준 국내 산업기술인력은 163만4,346명으로, 실제 필요인력보다 3만6,908명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300인 미만 중소 사업체의 인력 부족률(필요인력 대비 부족인원)은 3.1%로 500인 이상 대기업(0.3%)의 10.3배에 달할 정도로 심각했다. 인력부족과 동시에 고령화도 심화되고 있다. 전체 산업기술인력 중 20,30대 비중은 2014년 15.6%, 38.1%에서 2017년 14.2%, 35.2%로 꾸준히 하락하고 있었다. 특히 입사 1년 이내에 퇴사하는 조기퇴사율이 40.6%에 달했는데, 조기퇴사자 10명 중 8명은 신입사원이었다.
실제 산업현장의 ‘청년 공동화(空洞化)’ 현상은 점점 심화되고 있다. 기자가 지난 9일 찾은 경기 안산도금단지 일대는 수십개의 중소규모 도금공장이 밀집해 있었지만, 20대 기술인력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았다. 50여명의 근로자들이 근무하는 B공장에서 도금 작업을 하는 한국인 근로자 중 20대는 5명에 불과했다. B공장과 5분 거리에 있는 C공장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C공장은 도금 업무를 담당하는 50여명 중 20대가 6명이었다.
도금단지의 20대 근로자는 대부분 △특성화고 학생들이 기업과 학교를 오가면서 교육훈련을 받는 일학습병행제도 △군 복무 대신 기업체에서 일하는 산업기능요원제도를 활용해 취업을 하고 있었다. B공장 대표는 “그나마 공장의 매출액이 꾸준하고 근무환경이 나은 곳은 두 제도를 활용해 20대 인력을 고용할 수 있다”며 “대부분의 영세 공장은 가족끼리 운영하면서 외국인 근로자만 고용해 사업을 꾸린다”고 설명했다.
그나마 정부의 지원제도를 통해 청년들이 입사해도 오래 버티지 못하는 실정이다. 안산 일대 도금공장에서 40여년간 근무한 김찬식(가명ㆍ59)씨는 “20대 청년들 중 꾸준히 다니는 사람이 많지 않다 보니 20대 후반~30대 기술자를 찾는 게 어렵다”며 “세대교체를 못 해서 은퇴한 70대 기술자들이 되돌아 오고 있다”고 현장 상황을 설명했다.
청년들이 떠나는 이유는 다양했다. A공장의 박수용(가명ㆍ21)씨는 “외모와 언어가 다른 외국인 근로자들과 함께 어울려 근무하는 게 생소해 또래 친구들이 적응하지 못하고 관두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C공장에서 일하는 최민기(가명ㆍ19)씨는 “고령 인력이 많다 보니 잔심부름과 잡일을 내가 도맡게 되고, 쉬는 시간에도 마음 편히 쉴 수 없는 문화가 싫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반면 산업기능요원 복무를 마친 후 도금공장에서 경력을 쌓으며 창업의 꿈을 키우는 청년도 있었다. B공장에서 4년째 일하는 김준석(가명ㆍ23)씨는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았는데, 이곳에서 근속년수가 쌓이고 (주변 공장에 비해) 월급이 오르다 보니 남게 됐다”고 했다.
◇청년 떠난 자리 외국인이 메워도, 숙련기술 전수는 어려워
산업 경쟁력의 근간이 되는 재료산업(철강, 비철금속, 세라믹 등)과 전기산업도 청년 기술인력이 부족한 사정은 마찬가지다. 전기발전ㆍ배전 등 설비를 다루는 전기공사산업에서는 최근 20,30대 기술자 비율이 16%(2018 산업인력 현황 보고서 기준)에 불과하다. 한 전기업계 관계자는 “최근 한 전기공사업체가 산학협력 차원에서 교수추천 방식으로 특정 대학 전기과 학생 10명을 신입사원으로 채용했는데, 두 달도 지나지 않아 전원이 그만뒀다”며 “신입사원이 들어오자마자 사표를 쓰는 일은 비일비재 하다”고 설명했다. 20,30대의 평균 이직률이 약 45%에 달해 숙련기술자로 키워내기가 어렵다는 설명이다.
재료산업의 연령별 기술인력 분포도 역피라미드 형태로 고착화하고 있다. 40대 이상 비율이 89.6%를 차지하는 데 특히 시멘트, 광석, 기타비금속 분야는 20대 비중이 10%도 되지 않는다. 한 재료산업체에서는 2016년 초급 기술자를 25명 고용했더니 이듬해에 절반(12명)이 그만둔 일도 있었다. 대부분 20대인 근로자로, 업무강도도 높고 지역 특성상 공단 내 위치하는 경우가 많아 여가생활을 즐기기에 불편하다는 이유 등으로 산업 현장을 떠난 것이다.
국내 청년들이 찾지 않는 일자리 일부는 외국인들이 메우고 있다. 하지만 주로 노무직이나 단순 정비 등을 하는 기능직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다. 뿌리산업에서 외국인 종사자 수는 총 4만2,000명(2017년 기준)으로 전체의 7.9%를 차지하는데 기술ㆍ연구직은 0.2%에 불과하다. 노무직이 절반(52.6%)이고 기능직도 46.6%에 달한다. 재료산업의 경우 외국인 기술인력이 3.5% 수준이다. 체류기간이 4년10개월로 제한된 ‘고용허가제’를 이용해 한국으로 온 외국인 근로자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 숙련기술을 전수해 이들을 기술인력으로 키워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외국인 인력활용은 임시방편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외국인 인력 고용으로 당장 일손은 덜 수 있어도 기술인력 부족현상은 해소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외국인들은 한 차례 체류기간을 연장할 수는 있지만 그래도 10년을 채우기 힘들다. 금형 기술의 경우 10년 넘게 일해야 숙련 기술인력이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체질 개선 노력하지만 ‘역부족’
기술인력 양성을 위해 기업 스스로 체질 개선에 힘쓰는 경우도 있다. 안산도금단지에 위치한 신용금속은 최근 직원들을 위한 복지시설인 카페테리아, 체력단련실, 휴게공간 마련 등에 나섰다. 전종태 신용금속 기업부설연구소장(표면처리기술사)은 “도금 공장도 최근엔 안전시설, 폐수처리시설 등을 갖추고 기술도 자동화되는 추세지만, 업종 특성상 도제식 교육이 이뤄지다 보니 회사 문화가 여전히 경직돼 있는 게 사실”이라며 “좋은 인력이 유입되려면 기업 스스로 일터의 환경부터 바꿔 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물론 체질 개선에는 한계가 있다. 청년 구직자들이 찾지 않는 뿌리산업이나 전기공사업, 재료산업 등을 보면 소규모 사업체가 중심인 산업들이다. 근로조건 중 가장 중요한 임금 문제를 기업 혼자서 해결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직원 20명 규모의 한 금형업체 대표는 “다수의 중소기업은 신규 투자여력도 없고 임금도 중견기업 수준에 맞춰 주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표면처리 분야 명장인 배명직(60) 기양금속 대표는 “청년들이 중소기업을 기피하는 건 복지제도가 부실한 것보다 대기업에 비해 낮은 임금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더 큰 원인”이라며 “정부가 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신기술 연구개발(R&D) 지원 등에 투자를 많이 하는데, 오히려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청년들이 체감할 수 있는 직접 지원을 늘리는 게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직접 인건비 지원보다는 청년내일채움공제(중소기업 취업 청년이 3년간 월 16만5,000원씩 납부하면 정부와 기업이 매칭해 만기 시 3,000만원을 돌려주는 제도)와 같은 지원책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며 “지방에 산업체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기숙사, 교통시설, 편의시설 등 인프라 구축에도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제안했다.
안산=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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