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자바섬 1,000㎞ 버스 횡단
※ 인사할 때마다 상대를 축복(슬라맛)하는 나라 인도네시아. 2019년 3월 국내 일간지로는 처음 자카르타에 상주 특파원을 파견한 <한국일보>는 격주 목요일마다 다채로운 민족 종교 문화가 어우러진 인도네시아의 ‘비네카 퉁갈 이카(Bhinneka Tunggal Ikaㆍ다양성 속에서 하나됨을 추구)’를 선사합니다.
‘한국에서 가장 동쪽에 있는 섬은 독도이다’. 답이 뻔한 OX 문제에 장내가 소란스럽다. 힐끗 곁눈질과 잠깐 상의 뒤에 각자 정한 답을 들었다. 300여명 중 극소수만 X를 들었다. 정답 발표에 ‘인도네시아의 부산(부산과 실제 자매결연)’이라 불리는 동부자바 주도(州都) 수라바야의 수라바야국립대(UNESAㆍ우네사) 소강당은 환호로 넘실댔다.
이들은 정말 답을 알고 있었을까. 아이니(21)씨는 “몰랐다. 나눠준 홍보물을 미리 읽었다”고 했다. 엉겁결에 ‘O’를 들고 이후 최종 승자가 된 메가(21)씨는 “독도라는 지명을 처음 들었다.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꼭 잊지 않겠다”고 웃었다. 6일 오후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가 출제한 한국 관련 OX 문제 40여개에 희비가 교차하는 사이 대학생들은 자연스레 한국과 친해졌다. “친구가 되려면 서로를 올바르게 알고 이해해야 한다”는 박기태(44) 반크 단장의 강연 첫마디가 옳았다.
이날 행사는 5박6일(2~7일)간 버스로 자바섬을 횡단한 ‘트코 낭 자와(TeKo Nang Jawaㆍ한국 친구, 자바에 오다)’ 프로젝트의 백미다. 트코(TeKo)엔 ‘오다’와 ‘한국 친구(Teman Korea)’라는 두 가지 뜻이 담겼다. 횡단 거리만 약 1,000㎞로 한반도 최북단부터 최남단까지의 종단 거리(1,100㎞)와 맞먹는 전무후무한 대장정이었다. 자바섬은 인도네시아 인구의 절반 이상(1억4,000만명)이 산다.
인도네시아 주재 한국 대사관이 ‘지방 속으로’라는 기치 아래 진두지휘한 이번 프로젝트에 언론사로는 한국일보가 유일하게 동행했다. ‘자카르타~치르본~브르브스~솔로~수라바야’로 이어진 여정을 역순으로 되짚는다. 적어도 3만명 이상이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을 직접 체험했다. 인도네시아가 얼마나 한국을 사랑하고 친구가 되고 싶어하는지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현장이었다.
◇6~7일 수라바야: 역사
6일 우네사 행사를 맡은 반크는 식민 지배 등 양국의 역사적 동질성을 강조하며 다가섰다. 박기태 단장은 “현지 책들을 살펴보니 중국 일본에 비해 한국 소개는 적고, 동해는 일본해로 적혀 있었다”라며 “무턱대고 동해와 독도 얘기를 꺼내면 반감이 생길 것 같다”고 했다. 해금으로 양국의 민요를 연주해 호응을 얻고, 우리의 역사가 담긴 OX 문제로 흥미를 끌었다. “궂은 일도 함께 하는 친구가 되자”는 반크의 제안에 소강당을 메운 대학생과 교직원들은 종이비행기를 날리며 화답했다.
수라바야 도심 ‘한국 공원’에 있는 평화 기원의 탑도 방문했다. 일제 강점기에 끌려와 희생된 한국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2010년 5월 세워졌다. 당시 일본 영사관의 압력 탓에 ‘추모’라는 단어를 탑 이름에 새기지 못했다. 이경윤 재인니동부자바한인회장은 “두 차례 보수 공사가 미진해 연말까지 제대로 다시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7일 태권도를 접목한 행사엔 1만5,000여명이 몰렸다.
◇5일 솔로: 문화
중부자바주(州)의 솔로는 자바 문화의 중심이다. 조코 위도도(조코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이곳 태생으로 가구사업을 하다 2005년 시장에 당선돼 정치에 입문했다. 이날 밤 ‘트코 낭 자와’가 찾아간 솔로국제공연예술축제(SIPA)는 조코위 대통령이 시장 시절에 안동하회탈축제를 본떠 만들었다. 인도네시아 전역뿐 아니라 한국 중국 일본 대만 등지에서 공연 팀이 참가했다.
우리나라는 전북 및 경기 무형문화재 전수자 등으로 꾸려진 ‘천슬전통춤원’ 무용단이 공연을 펼쳤다. 주인도네시아한국문화원은 관람객을 위해 △한복 입어보기 △전통놀이 투호 △한글 쓰기 등을 선보였다. 프로젝트에 동행한 유튜버 장한솔(25)씨를 보기 위한 인파로 행사장이 미어터졌다. 이라와티(56) SIPA 조직위원장은 “한국의 재미있는 프로젝트 덕인지 지난 축제보다 훨씬 많은 1만2,000여명이 찾아왔다”고 귀띔했다.
◇4일 브르브스: 산업
한인 봉제업체 대한글로벌의 신(新)공장이 23ha 부지에 펼쳐져 있었다. 현지인 5,600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곳이다. 이날 공장 개소 기념 축제는 대동의 장이었다. 현지인들로 구성된 팀들이 선보인 한국 가요(K-Pop)에 맞춰 양국이 하나돼 덩실덩실 춤을 췄다. 인도네시아 전통 음악을 공부한 한국인들과 국악을 배우려는 인도네시아인들이 함께 꾸린 ‘가믈란 아리랑’ 팀의 협주는 독특한 음색으로 심금을 울렸다.
공장 직원 헤루(45)씨는 “새 공장에서 인도네시아와 한국이 하나가 돼 기쁘다, 양국 협력이 산업 분야에서 더 튼튼해지길 바란다”고 했다. 콜리스(22)씨는 “한국인이 인도네시아 문화를 배운다는 사실에 감격했다”고 말했다. 현재 인도네시아엔 한국 기업 2,200개가 진출해 현지인 100만명 이상을 고용하고 있다.
◇3일 치르본: 환경
해변에 널린 쓰레기를 양국이 합심해 치웠다. 300여명이 1시간도 안돼 908.48㎏의 쓰레기를 수거했다. 쓰레기 밭이던 해변이 한결 깨끗해졌다. 2018 미스 인터내셔널 인도네시아 출신 환경보호대사 바니아(25)씨는 “해양 쓰레기 수거 행사에 여러 차례 가봤는데 한국인들과 함께한 건 처음”이라고 했고, 고등학생 사스나(15)양은 “환경 보호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다”고 말했다. 청소 뒤엔 대형 비빔밥을 양국이 함께 비비고 나눴다. 한인니해양과학공동연구센터(MTCRC) 개소 1주년 기념식도 열렸다.
재인도네시아외식업협의회의 한식 푸드트럭은 2일 자카르타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동행했다. 그들이 매일 나눠 준 떡볶이와 어묵은 행사를 살찌웠다. 인도네시아 한인 사회의 역량이 총동원된 프로젝트는 숨은 공로자들 덕에 더 빛났다. 임영석 박진영 조은영 김민정 최석일 천영평 김종훈 김희기 그리고 장한솔, 그들의 이름이나마 남긴다.
자카르타ㆍ치르본ㆍ브르브스ㆍ솔로ㆍ수라바야(인도네시아)=글ㆍ사진 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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