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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가 마른 ‘개천의 용’… 계층이동 사다리의 붕괴 재확인

입력
2019.09.12 04:40
수정
2019.09.12 16:30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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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국 사태, 무엇을 남겼나] <4> 대물림 되는 계급 논란 

 “붕어ㆍ가재도 행복한 개천 만들자”더니… 조국 자녀 인맥 동원 화려한 스펙 

 재산뿐 아니라 직업까지 대물림… 단순노무직 자녀 전문직 이동은 16% 그쳐 

8월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마이크임팩트스퀘어에서 청년전태일 주최로 열린 2030청년들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와의 공개 대담회에서 조 후보자의 자녀 논문 의혹에 대해 규탄하고 있다. 뉴스1
8월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마이크임팩트스퀘어에서 청년전태일 주최로 열린 2030청년들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와의 공개 대담회에서 조 후보자의 자녀 논문 의혹에 대해 규탄하고 있다. 뉴스1

“모두가 용이 될 수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 더 중요한 것은 개천에서 붕어, 개구리, 가재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조국 법무부 장관은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던 2012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위터에 “예쁘고 따뜻한 개천을 만드는 데 힘을 쏟자”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조 장관의 이른바 ‘따뜻한 개천론’은 청년들이 과도한 경쟁 없이도 행복하고 평등하게 살아가는 미래를 꿈꾸게 했다.

하지만 조 장관과 자녀 스스로가 주도면밀하게 용이 되기 위해 노력했던 여러 정황들에서 보듯, 여전히 우리 사회의 개천은 머물만한 곳이 되지 못하고 있다. 특성화고 졸업생, 지방대생, 비정규직 등 개천 출신 청년들에게 조 장관의 자녀가 다닌 외국어고, 명문대, 의학전문대학원은 남의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전혀 따뜻하지 않은 개천, 대물림 되는 무형의 지위는 이른바 ‘계급 사회’ 논란을 갈수록 가열시키는 연료다.

점점 벌어지는 소득격차. 그래픽=강준구 기자
점점 벌어지는 소득격차. 그래픽=강준구 기자

 ◇따뜻하지 않은 개천 

11일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기준 소득 하위 20%(1분위) 가구의 처분가능소득(월 평균 86만5,700원)은 지난해보다 1.9% 증가하는 데 그쳐 같은 기간 3.3% 월 소득(올해 2분기 495만1,400원)이 증가한 소득 상위 20%(5분위)와의 격차는 더 벌어졌다.

소득 불평등도를 보여주는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은 올해 2분기 5.30배까지 높아져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03년 이후 2분기 기준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는 개천과 용이 사는 천상과의 격차가 갈수록 더 벌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이에 정부는 기초연금 인상 등 재분배 정책을 강화하며 개천의 생활 수준을 높이는 데 힘쓰고 있다. 실제 1분위 가구의 공적이전소득(2분기 월 평균 24만5,200원)은 1년 전보다 33.5%나 늘었다.

하지만 이들의 생활 수준은 좀체 나아지지 않았다. 1년간 늘어난 공적이전소득(6만1,500원)보다 불경기, 제도 변화 등의 여파로 근로소득 감소폭(8만2,400원ㆍ-18.5%)이 더 컸다. 이런 경제적 여유의 차이는 삶의 질의 차이로 이어진다. 지난해 5분위 가구의 오락ㆍ문화비와 교육비를 더한 값은 월 평균 69만1,588원(총 지출의 12.3%)로, 1분위 가구(10만275원ㆍ7.1%)의 7배에 가까웠다. 1분위 가구가 식비(17.9%), 주거비(16.9%) 등 필수 지출을 위한 부담에 허덕이는 동안 고소득층은 문화를 향유하고 자녀 교육에 신경을 쓴 셈이다.

지난 4일 대전 중구 한 아파트에서는 일가족 4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가족이 살던 집 현관에는 6개월치 유윳값 22만2,000원이 미납됐다는 고지서가 놓여 있었다. 앞서 지난 7월에는 서울 관악구 한 임대아파트에서 탈북자 한 모씨 모자가 굶어 죽은 채 발견되기도 했다. 우리 사회 개천은 아직 ‘전혀’ 따뜻하지 않다.

 ◇직업도 부도 대물림 

국민 다수가 조국 사태에 절망한 건, 아무리 노력해도 조국 가족과 같은 환경을 좀체 누리기 어려워서였다. 지난달 31일 청년노동단체 청년전태일이 주최한 공개 대담회에서도 청년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출발선이 있다”며 조 장관 딸의 입시 관련 의혹을 성토했다.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말은 고도성장기를 상징하는 신화가 됐다. 이제는 부도, 직업도 부모에서 자식으로 대물림 되며 계층이 고착화 되고 있다.

김낙년 동국대 교수의 ‘한국에서의 부와 상속’ 연구에 따르면, 부를 축적하는 데 상속이 기여한 비중은 1980년대 37.7%에서 1990년대 29%까지 떨어졌다가 2010년 이후 다시 38.3%까지 높아졌다. 김 교수는 “고도성장기에는 자수성가로 부를 축적할 기회가 열려 있었지만 지금은 반대”라며 “스스로 번 소득에 의한 저축보다 상속ㆍ증여에 의한 이전 자산이 앞으로 더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재산뿐이 아니다. 부모의 직업도 대물림되는 확률이 높아졌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직업 및 소득 계층의 세대 간 이전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아버지가 ‘1군 직업(입법공무원, 고위임직원, 전문직 등)’을 가졌는데 자녀가 ‘3군 직업(서비스 종사자, 판매종사자, 단순노무종사자 등)’을 가지게 되는 비율은 13.0%에 불과했다. 반면 자녀도 1군 직업에 머무르는 비율은 32.3%로, 전체 조사 대상자 중 1군 직업의 비중(20.4%)보다 11.9%포인트나 높았다. 3군 직업의 아버지를 둔 자녀가 1군 직업으로 이동하는 비율은 16.6%에 그쳤다.

이경희 전 노동연 선임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부모의 소득이 자녀 교육에 대한 투자로 이어지고 이를 통해 부모의 계층이 대물림 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세종=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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