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살인미수 판단에 검찰은 특수상해 결론
檢 “살인 고의까지 인정은 어렵다고 판단”
지난달 25일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한 마을. 부모, 고등학생 자녀 2명과 벌초를 하러 왔던 A(42)씨가 동네 주민 B(61)씨가 휘두른 전기톱에 중상을 입었다. 경찰은 살인미수로 판단했지만 검찰은 특수상해로 결론을 내렸다. 피해자 가족은 반발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사연을 올렸다. 일명 ‘제주 벌초객 전기톱 사건’이다.
사건은 A씨의 고조할머니를 모신 묘에서 벌어졌다. 주택 내 마당에 위치한 이 묘의 주변 상태를 두고 A씨와 집주인 여성이 실랑이를 벌였고 이 과정에서 집주인 소유 건물에 거주하는 세입자 B씨가 엮였다.
경찰 관계자는 10일 한국일보 통화에서 “제주도에는 집 마당 안에도 묘가 있는 경우가 있다. 사건이 벌어진 묘도 사람이 살고 있는 집 마당 안에 있던 것”이라며 “처음 벌초객과 실랑이가 붙은 건 묘가 있는 마당에 사는 집주인 여성이었다. 가해자는 ‘바깥거리’에 살고 있는 세입자”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주도는 집이 안거리(본채), 바깥거리(사랑채) 이렇게 나뉘어져 있는 구조가 많다”며 “안거리에는 집주인 여자분, 바깥거리에는 가해자 B씨가 살았다. 애초 집주인과 A씨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는데 평소 집주인과 잘 알던 사이인 B씨가 싸움에 개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에 따르면 실랑이는 묘 주변에 쌓인 장작더미에서 시작됐다. 벌초객 A씨가 묘 주변에 통나무가 쌓여 있는 것을 문제 삼자 집주인은 자신이 통나무를 쌓아둘 권리에 대해 말했고, 이 과정에서 벌초객 일행 차가 묘가 있는 마당으로 들어오면서 실랑이는 주차 문제, 나아가 서로 ‘왜 반말을 하느냐’는 문제로까지 확대됐다. 이 과정에서 B씨가 자신의 전기톱을 들고 나와 다툼을 하던 끝에 A씨가 중상을 입었다. A씨는 오른쪽 다리 대퇴부 동맥이 잘리는 중상을 입고 수술을 받았다.
경찰은 조사 끝에 B씨에게 살인미수 혐의를 적용했지만, 사건을 송치받은 검찰은 특수상해 혐의를 적용했다.
피해자 측은 검찰 처분이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자신을 피해자 누나라고 밝힌 청원인은 지난 6일 국민청원 게시판에 ‘제주도 전기톱 사건...도와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글을 올려 억울함을 호소했다. 청원인은 검찰이 살인미수 혐의가 아닌 특수상해 혐의를 적용한 것을 두고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제 동생은 과다출혈로 사망할 뻔 했다”며 “여러분 입장이라면 켜져 있는 전기톱으로 공격했는데 그냥 특수상해라고만 생각하실 수 있나”라고 되물었다. 청원인은 “동생은 오른 다리로는 걸을 수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며 “택시운전을 하는 남동생 이제 어찌해야 하나”라고 호소했다. 해당 청원은 10일 오후 현재 9만명 이상 동의를 얻었다.
경찰은 B씨가 전기톱을 다루는 게 익숙하다는 점, 피해자의 대퇴부 동맥이 잘리면서 과다출혈 등 위험성이 매우 높았던 점, 주변에서 말린 후에야 B씨가 행동을 멈춘 점 등을 고려해 B씨에 대해 살인미수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송치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사건을 넘겨 받은 검찰은 지난 5일 살인미수 혐의가 아닌 특수상해 혐의로 B씨를 구속기소했다. 검찰 관계자는 “A, B씨 두 사람이 당일 처음 만난 사이인 점과 다투게 된 구체적인 경위, B씨가 전기톱을 1회 휘두른 행위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참작해 살인의 고의까지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해서 특수상해로 구속기소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민정 기자 mjm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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