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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 전시장 유물 만져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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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 전시장 유물 만져도 됩니다”

입력
2019.09.12 04:4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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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재정 밀양미리벌박물관장

폐교 개보수해 민속유물 전시

[저작권 한국일보] 성재정 관장이 9일 오후 경남 밀양시 초동면 미리벌민속박물관 상설 전시실 앞에서 전시 유물을 설명하다 잠시 멈춰 포즈를 취했다. 밀양=전혜원 기자 iamjhw@hankookilbo.com
[저작권 한국일보] 성재정 관장이 9일 오후 경남 밀양시 초동면 미리벌민속박물관 상설 전시실 앞에서 전시 유물을 설명하다 잠시 멈춰 포즈를 취했다. 밀양=전혜원 기자 iamjhw@hankookilbo.com

”단순히 배열하는 것보다 관람객 입장에서 전시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유물의 위치와 높이, 색감, 설명문 등도 세심하게 배려해야 합니다.“

철저하게 이용자 관점에서 고민했다. 애지중지 모아온 작품들의 가치가 방문객들에게 제대로 전달되기 위한 세심함으로 보였다. 20년 넘게 민속유물을 수집하면서 ‘별난 박물관장’으로 소문난 그의 고집인 듯 했다.

민족 최대 명절 추석을 앞두고 관람객들이 추석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게 전시물 교체에 분주한 성재정(75) 밀양미리벌박물관장은 “전시도 문법처럼 ‘기승전결’을 갖고 있다”며 이 같이 말했다. 9일 경남 밀양시 초동면에 자리한 박물관에서 만난 그는 “박물관 전시는 관람객들에게 문화를 이해시키고 전달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며 다른 분야의 전시회와 다른 차별성도 부각시켰다. 오랫동안 민속유물을 접하면서 터득한 노하우로 해석됐다.

민속유물과 그의 인연은 197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경남 진주의 만석꾼 집안에서 자란 그는 가세가 기울면서 집에 있던 민속품이 하나 둘씩 없어지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고 이를 되찾기 위해 수집에 나섰다. “출판사 영업직으로 근무한 탓에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기에 안성맞춤이었다”는 게 그의 귀띔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불거졌다. 20여년간 하나 둘 모으기 시작한 민속유물을 보관할 장소가 여의치 않았던 것. 전전긍긍하던 그는 1998년 밀양시의 도움으로 폐교된 초등학교를 인수, 박물관으로 탈바꿈시키기 시작했다. 고생길도 열렸다. 낡은 건물이다 보니 우천시엔 양동이에 빗물을 받아 내기 일쑤였다. 운동장을 뒤덮은 잡초 제거엔 고초도 뒤따랐다.

”처음엔 정말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그래도 애지중지 모은 유물들을 마냥 창고에 쌓아 둘 수만 없다는 생각에 하루가 어떻게 가는 지 모를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내며 전시공간 마련에 매달렸습니다.“ 민속유물 전시에 대한 그의 정열은 육체적인 고통을 이겨내는 밑거름으로 작용했다.

그의 열정 덕분에 폐교도 달라졌다. 폐교에 둥지를 튼 이듬해 2종 전시관의 박물관으로 등록한 데 이어 2008년엔 박물관 경력인정대상기관으로 선정됐다. 이어 2010년엔 재등록 과정을 거쳐 어엿한 1종 박물관으로 승격됐다.

박물관 소장 유물의 숫자를 묻는 질문에 “정확한 숫자는 저도 몰라요”라며 멋쩍게 웃어 보인 그는 “민속품 5,000여점, 고서와 고문서가 2,000여점, 조선시대 복식과 비단 및 조각보 2만여점, 농기구와 농기가 1,000여점에 달한다”고 전했다.

특히 사립박물관으로는 이례적으로 경남도지정유형문화재 2점과 경남도문화재자료도 663건을 보유하고 있다. 실내용 평상 등 이 박물관에서만 볼 수 있는 것도 적지 않다.

[저작권 한국일보] 성재정 관장이 9일 오후 경남 밀양시 초동면 미리벌민속박물관 입구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밀양=전혜원 기자 iamjhw@hankookilbo.com
[저작권 한국일보] 성재정 관장이 9일 오후 경남 밀양시 초동면 미리벌민속박물관 입구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밀양=전혜원 기자 iamjhw@hankookilbo.com

박물관은 4개 상설 전시실과 체험학습을 할 수 있는 2개 교육실, 아이들 놀이터로 정성껏 가꾼 넓은 천연잔디밭(3,305㎡) 등으로 꾸며져 있다.

품목도 다양하다. 1·2전실엔 사랑채 및 안채와 관련 있는 목가구들이, 3·4전시실엔 각종 소반과 자기·유기그릇을 포함한 부엌가구 및 등잔·화로 등이 자리하고 있다.

어린이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이 전시 유물들은 직접 만져 볼 수도 있다. 어린이들에게 신기하기만 한 민속유물들은 설명과 함께 직접 만져 보고 작동해봐야 빨리 이해할 수 있고, 기억에도 깊게 남는 만큼 ‘만지지 마시오’란 푯말 대신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설명을 해 준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어린이들을 위한 배려는 실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박물관 주변 잔디밭엔 으레 붙어 있을 ‘밟지 마세요’란 푯말이 없다. 관람을 마친 어린이들이 또래들과 맘껏 뛰놀 수 있는 운동장으로 제공되기 때문이다.

매년 상설 전시유물이 바뀌는 것도 이 박물관의 특징이다. 보유 유물이 많아서가 아니다. 쓰임새는 같지만 모양이 다른 유물들을 감상하기 바라는 관람객 입장을 고려해서다. 휴일 또한 없다. 시간에 관계없이 이곳을 찾으려는 관람객들에 대한 그의 배려다.

남은 바람도 내비쳤다. “앞으로 서지·퀼트·옹기·농기구·제2민속박물관 5개를 추가로 건립하는 게 꿈”이라는 그는 “평생 모은 유물들이 세상으로 나와 후손들에게 우리 것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문화유산의 산 교장으로 활용되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밀양=이동렬 기자 d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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