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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만나다] 장혜진 “잘 쏘든 못 쏘든, 지나간 화살은 잊는 게 상책이야”

입력
2019.09.12 11:0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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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여자양궁 간판 장혜진과 유망주 오정아

※ 어린 운동 선수들은 꿈을 먹고 자랍니다. 박찬호, 박세리, 김연아를 보고 자란 선수들이 있어 한국 스포츠는 크게 성장했습니다. 지금도 누군가는 여전히 스타의 발자취를 따라 걷습니다. <한국일보> 는 어린 선수들이 자신의 롤모델인 스타를 직접 만나 궁금한 것을 묻고 함께 희망을 키워가는 시리즈를 격주 목요일 연재합니다.

한국 여자양궁 간판 장혜진(오른쪽)과 유망주 오정아가 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인근 한 카페에서 서로를 가리키고 있다. 김형준 기자
한국 여자양궁 간판 장혜진(오른쪽)과 유망주 오정아가 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인근 한 카페에서 서로를 가리키고 있다. 김형준 기자

한국 양궁은 자타공인 세계 최강이다. 올림픽 ‘효자종목’으로 꼽힌 지 오래된 데다 지난 2016년 리우올림픽에선 남녀 개인전과 단체전을 모두 휩쓸면서 올림픽 사상 최초로 전 종목 석권이란 위업을 달성했다. 국민들에게 양궁 금메달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져 왔듯, 남녀 혼성전이 추가돼 5개의 금메달이 걸린 내년 도쿄올림픽에서도 전 종목 석권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 양궁이 마주한 현실은 다르다. 국내 지도자들이 세계무대에 퍼져나가 상향평준화를 이루면서 여자양궁은 대만과 중국이 한국을 위협하고 있고, 남자양궁은 거의 모든 팀이 라이벌로 여겨지는 추세다. 지난 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인근 한 카페에서 리우올림픽 2관왕 장혜진(32ㆍLH)을 만난 여자양궁 유망주 오정아(13)는 “한국 여자양궁이 워낙 강해 자부심이 크지만 우리가 커서 대표로 나갔는데 금메달을 따지 못하면 어떡하나 걱정도 된다”며 언니들에 대한 존경과 함께 벌써부터 가슴 한 구석의 부담감도 끄집어냈다.

장혜진은 “내가 후배들에 비하면 그나마 시대를 잘 타고 난 선수라 올림픽 금메달을 딴 것 같다”고 몸을 낮추면서도 “국내 선수들 기량도 해마다 다르다고 느낄 정도로 발전하고 있어 나 또한 연습을 쉬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무조건 일등을 해야 한다고 부담을 주기 보다는 최선을 다한 과정에 주목해주는 날이 조금은 빨리 왔으면 좋겠다”며 “나중에 후배들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못 따더라도 비난보다 격려가 많았으면 좋겠다”고 미래 궁사에 용기를 불어넣었다.

한국 여자양궁 간판 장혜진(왼쪽)이 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인근 한 카페에서 양궁 유망주 오정아를 만나 자세를 살펴주고 있다. 김형준 기자
한국 여자양궁 간판 장혜진(왼쪽)이 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인근 한 카페에서 양궁 유망주 오정아를 만나 자세를 살펴주고 있다. 김형준 기자

오정아는 중학교 1학년 치고는 큰 키(166㎝)를 가진 유망주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교내 스포츠클럽 활동으로 활을 잡은 뒤 재능을 보여 올해 관악중학교 양궁부에 입단했다. 지난 5월 전국소년체육대회에서 60m 단체전 1위를 합작하고, 개인전에서도 1위에 3점차 뒤진 2위에 올랐을 정도로 재능이 뛰어나다. 친구들과 맛집을 찾아 다니고 영화를 보는 걸 좋아하는 평범한 소녀지만, ‘슛 감각’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매일 500번 정도씩 활을 쏘느라 친구들과 어울릴 시간이 부족한 게 아쉽다고 한다.

부지런히 훈련하고, 연령대별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오정아는 “언니를 보면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다”라면서 수줍은 목소리로 차근히 질문을 꺼냈다. 제일 먼저 궁금한 것은 강인한 정신력이다. 장혜진은 리우올림픽 때 3점을 쏘고도 흔들리지 않았던 비결을 묻는 오정아의 질문에 “잘 쏘든 못 쏘든 지나간 활은 잊는 게 상책”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슛 감각이 떨어졌다고 느낄 땐 계속 운동을 해 끌어올리려 애쓰기보다 하루나 이틀 쉬는 게 자신감을 되찾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조언했다.

오정아는 초등학교 4학년때 화살이 과녁을 다 비껴가는 경험을 했단다. 화살 하나에 5만원이 넘는데, 과녁을 비껴가면 화살이 망가져 하루 수십만원씩 날릴 텐데 그러면 ‘조기 은퇴’를 해야 하나 걱정했다고 털어놨다. 장혜진은 오정아 나이대인 중학교 시절 ‘크리커 병’에 밤바다 눈물을 쏟은 경험을 전하면서 “그럼에도 (양궁을)그만 두겠단 얘기는 안 했던 것 같다”고 했다. 크리커 병은 크리커(clickerㆍ활에 달린 일종의 조준기)가 ‘딸깍’ 작동해도 불발 우려에 슛을 하지 못하는 심리적 현상을 일컫는데, 실제 이 현상 탓에 은퇴한 선수도 많다고 한다. 그는 “조준이 잘 되지 않을 땐 차라리 휴식을 취하면서 이미지트레이닝을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을 이었다.

한국 여자양궁 간판 장혜진(오른쪽)과 유망주 오정아가 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인근 한 카페에서 서로를 가리키고 있다. 김형준 기자
한국 여자양궁 간판 장혜진(오른쪽)과 유망주 오정아가 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인근 한 카페에서 서로를 가리키고 있다. 김형준 기자

징크스 극복법을 묻는 질문은 웃음으로 정리됐다. “시합 직전 연습 때 활을 잘 쏘면, 시합 때 잘 안 맞더라”는 오정아의 징크스를 들은 장혜진은 “징크스는 만들자면 한도 끝도 없다”며 “그런 거(징크스) 키우지 말라”고 강조했다. 대회 때만 되면 숱한 징크스에 신경 쓰는 국가대표 동료 김우진(27ㆍ청주시청)을 예로 들었다. 장혜진은 “우진이가 시합 말아먹을 것 같다며 (국이나 물에)밥을 안 말아 먹고, 빵은 빵점(0점)쏠 까봐, 죽은 죽 쑬 까봐 안 먹는데 그러면 먹을 게 별로 없다”며 웃었다. 다만 학생 때 지도자에 맞아가며 배운 기억을 언급하면서 “못 했을 때 맞은 기억은 오래간다”며 “요즘은 (선수폭행이) 많이 사라진 것 같지만, 때리는 지도자는 이제 없었으면 한다”고 했다.

여자선수로는 다소 늦은 20대 중반에야 국가대표에 처음 선발된 장혜진은 이번 추석에도 쉼 없이 활을 쏜다. 오는 18일~24일 경북 예천군에서 열리는 2020년 도쿄올림픽 국가대표 2차 선발전을 위해서다. 그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가깝게 지내는데, 대회 후 인근 의성군에 사는 할머니댁을 찾아 뵐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오정아는 “언니가 올림픽을 향해 연습하는 만큼 저 또한 추석 동안 체력 등 개인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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