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2020년까지 해외 원조를 뜻하는 ‘공적개발원조(ODA)’ 규모를 국민총소득(GNI) 대비 0.2% 수준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됐다. 애초 야심차게 제시한 목표에 비해 실제 내년 책정된 예산은 한참 부족하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에서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성장한 상징적인 국가이면서도, 정작 경제규모 대비 원조에는 여전히 인색한 나라라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정부가 최근 국회에 제출한 ‘2020년 예산안’에 따르면, 내년도 ODA에 투입되는 예산은 3조5,000억원으로 올해(3조1,000억원)보다 11.4% 증가한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강조하는 신남방 지역 전략투자가 6,000억원에서 8,000억원으로 늘어나 최근 5년 사이 가장 높은 증가율을 기록하게 됐다. 이는 지난해 증여등가액(지출액-현재가치로 환산한 원리금) 기준 ODA 액수 23억5,100만달러(약 2조8,000억원), 2017년 21억5,200만달러(약 2조5,700억원)에 비해서도 크게 늘어난 수치다.
하지만 2015년 박근혜 정부가 ‘제2차 국제개발협력 기본계획’을 통해 “2020년까지 GNI 대비 ODA 비중을 0.2%로, 2030년엔 0.3%로 끌어올리겠다”고 밝힌 목표에는 한참 미치지 못한다. 지난해 GNI(1,898조5,000억원) 규모를 감안하면, 내년도 ODA 예산 3조5,000억원은 GNI의 1%대에 머물 것이 확실시되기 때문이다. ODA 홈페이지에 따르면 우리나라 GNI 대비 ODA 비율은 △2015년 0.14% △2016년 0.16% △2017년 0.14%에 그치고 있다. 문 대통령이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서 개발협력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을 약속한 뒤 예산이 편성된 지난해에도 0.15%에 그쳤다.
사실 이번에 지키지 못한 ‘0.2% 공약’마저 이전 목표를 하향한 수치다. 정부는 201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한 뒤, 2015년까지 GNI 대비 ODA 비율을 0.25%까지 확대하겠다는 약속을 내놨다. 하지만 세계경제 침체, 긴축재정 강화 등으로 0.25%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지난해 OECD가 발간한 ‘개발협력 동료 검토(Peer Reviews)’에서 DAC 회원국의 심사관이 “원조 규모가 이전 승인된 목표에 비해 낮은 수준”이라며 “한국의 ODA 실적은 국제적으로 공약한 목표에 미달한다”고 직접 지적했을 정도다.
한국의 국제 원조는 경제 규모에 비해 적은 편에 속한다. OECD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한국의 ODA 액수는 DAC 29개국(유럽연합 제외) 가운데 15위에 해당하지만, GNI 대비 비율은 24위에 그쳤다. 한국보다 비율이 낮은 국가는 폴란드, 체코, 헝가리 등 5개국뿐이며, 최하위 슬로바키아와의 차이도 0.02%포인트에 불과하다. 유엔 권고 기준 0.7%, DAC 국가 평균 0.31%은 물론, 최근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와 여론전을 펼치는 일본(0.28%)에 비해서도 한참 적은 수치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은 그만큼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 관계자는 “ODA 관련 공약은 구속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각 국가가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라면서도 “약속을 반복해서 지키지 못하고 국제원조가 한참 적으면 우리 체면만 깎이게 된다”고 말했다.
세종=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