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을 쪼개 쓰면서 시작된 기술문명이 나노(10억분의 1m) 단위의 소자를 활용하는 수준에 도달했다. 현대 문명시대를 철기에 이은 플라스틱 시대라 부르는 이도 있지만, 기원전 철 소재 농기구와 무기가 발휘한 영향력을 감안하면, 반도체 시대라 부르는 게 더 타당하다는 주장도 있다.
1947년 처음 가동된 애니악(ENIAK)컴퓨터는 거대한 구조물이었다. 무게만 30톤에 달했고,높이 2.5m 폭 1m 길이 25m에 진공관 1만 8,000여개가 빼곡하게 심겨져 있었다. 진공관은 전기도 많이 먹고, 발열량도 만만찮고, 수명도 짧았다. 진공관 하나만 잘못 돼도, 배선 하나만 끊기거나 꼬여도 애니악은 제 성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진공관의 한계를 극복하게 해 준 게 47년 그해, 미국 벨연구소 월터 브래튼(1957년 노벨물리학상) 등이 개발한 초소형 반도체 소자 트랜지스터였다. 트랜지스터는 크기와 효율성, 비용, 내구성 면에서 진공관을 압도했다. 하지만 트랜지스터조차 50년대 과학 기술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과학 기술자들은 비워진 진공관의 자리에 더 복잡한 회로를 채워 넣기 시작했다. 욕망에 비례해 구상은 복잡해졌고, 공간은 진공관 시대보다 더 비좁아졌다. 수많은 트랜지스터, 다이오드, 저항, 콘덴서 등 소자를 납땜으로 잇는 공정도, 소자들의 상호간섭(노이즈)도 넘어야 할 벽이었다.
그 난관을 돌파한 새로운 도약이 집적회로(Integrated Circuit)였다. 집적회로란 트랜지스터와 저항, 코일, 축전기 등 소자들을 공간 위에 횡으로 연결하는 게 아니라, 작은 실리콘 칩 위에 레고 블록을 쌓듯이 층층이 ‘집적’한 뒤 미세한 도체로 각각을 연결한, 소자들을 집적한 소자다. 오늘날의 기술문명은, 그것이 반도체 문명이든 나노문명이든, 모두 집적회로 결합을 통해 구현된다.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라는 민간회사 기술자 잭 킬비(Jack Kilby, 1923~2005)가 1958년 9월 12일 회사 임원들 앞에서, 트랜지스터 6개를 이어 만든 최초의 집적회로 성능 시범을 보였다. 인류가 그렇게 또 한 번 도약했고, 잭 킬비는 2000년 노벨물리학상을 탔다. 최윤필 선임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