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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로 말한다”… 판사들은 마지막까지 오해 살 만한 언행 꺼려

입력
2019.09.09 04:40
수정
2019.09.09 07:43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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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캐슬, 사실은?] <13> ‘조직’에 흔적 남기고 떠나는 검사들

대한민국 법원. 한국일보 자료사진
대한민국 법원. 한국일보 자료사진

고별사가 일종의 통과의례인 것 같은 검사와 달리, 판사가 내부통신망에 글을 남기는 경우는 많지 않다. 떠나는 그 순간까지, 검찰과 법원의 서로 다른 조직 문화가 작동한다.

가장 최근 고별사로 화제가 된 판사는 단연 이탄희 전 수원지법 안양지원 판사다.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이 세상에 드러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그는 지난 1월 법원 내부통신망 코트넷에 ‘존경하는 모든 판사님들께’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판사생활을 마무리하는 소회를 밝혔다. “행정처를 중심으로 벌어진 헌법에 반하는 행위들은 건전한 법관사회의 가치와 양식에 대한 배신이었다고 생각한다”며 자신의 선택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현직 판사가 사법개혁을 촉구하는 글과 함께 사표를 던져 이슈가 된 경우도 있다. 2017년 최한돈 부장판사는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이 ‘판사 블랙리스트’ 추가 조사를 거부하자 항의성 사표를 내면서 “대법원장이 우리 사법부의 마지막 자정 의지와 노력을 꺾어 버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글을 올렸다. 당시 사의는 반려됐지만 이후 취임한 김명수 대법원장이 추가 조사를 한 계기가 됐다. 앞서 2003년에는 나중에 대법관을 역임한 박시환 부장판사가 사법개혁을 촉구하는 글을 올리며 사표를 내 사법파동으로 이어졌다. 반면, 사법농단의 핵심으로 꼽히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2017년 사표를 내며 “열심히 살아왔고 부끄럽지 않게 법관의 길을 걸어왔다고 자부한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는 극히 예외적인 사례에 해당한다. 일반적으로 판사들은 장문의 고별사를 남기지 않는다. 설혹 남긴다 해도 수백 개의 댓글이 화답하는 문화도 없다. 판사들의 고별사는 ‘법관으로 큰 일 없이 퇴임할 수 있는 것은 여러분 덕분입니다’는 정도에 그치거나, 친분 있는 몇몇에게만 메일을 보내는 정도다.

각자 사건을 맡아 처리하는 판사 업무의 특성이 반영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검찰은 사직했던 검사가 검찰총장으로 되돌아오자 뒤늦게 옛 고별사에 댓글을 다는 사람이 있었을 정도로 조직에 대한 감각이 있다”며 “이에 반해 판사는 재판부 별로 독립적으로 움직이기에 조직에 대한 감각이 엷고, 그러다 보니 고별사를 남기고 댓글을 다는 문화가 생기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판사 특유의, 공정성에 대한 강박도 작용한다.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는 신념 아래 판사들은 괜한 오해를 살만한 언행으로 공정성을 의심받는 사태를 가장 꺼린다. 법원을 떠나는 순간까지도 이를 의식해 스스로 자제하는 이들이 많다. 법원이 검찰에 비해 정치적 영향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점도 작용한다. 여기에 사법농단 사태로 인해 공개적인 글을 올리길 더욱 꺼려하는 분위기다. 한 고법 부장판사는 “과거와 달리 법원 내부의 이질성이 커져 글을 올리면 작은 것 하나를 두고도 꼬투리를 잡는 경우가 있다”면서 “괜한 오해를 사거나 피곤한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아 퇴직 인사는 남기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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