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1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회갑 선물로 받은 1억원짜리 시계 2개를 논두렁에 내다 버렸다”는 기사가 방송 전파를 탔다. 관련 기사가 쏟아졌다. 당시 이명박 정부 검찰로부터 뇌물수수 혐의로 수사를 받던 노 전 대통령은 졸지에 파렴치범이 됐다. 그 전후로 아들의 호화 유학, 딸의 미국 아파트 계약서 파기 의혹 등 가족들도 연일 도마에 올랐다. 5월 23일 노 전 대통령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이른바 ‘논두렁 시계’ 보도는 언론의 망신 주기 또는 모욕 주기 기사의 전형으로 지금까지도 비난과 질타를 받고 있다.
□ ‘논두렁 시계’를 처음 보도한 방송사는 검찰을 출처로 지목한 반면 수사 책임자였던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은 최근에도 방송 인터뷰에서 국정원으로 화살을 돌렸다. 그는 현 정부가 꾸린 국정원개혁위원회 조사에서 “(내가 입을 열면) 다칠 사람들이 많다”며 진술을 거부한 뒤 돌연 유학을 구실로 미국으로 출국했다. 그러나 ‘논두렁 시계’를 누가 기획했든 수사 내용이 외부로 유출됐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시계를 노 전 대통령의 친형 건평씨가 받았고 권양숙 여사에게는 퇴임 후에야 건넨 사실은 누락시킨 채로였다. 실제 버렸는지 여부도 불확실하다.
□ 수사기관의 피의사실 공표, 특히 일부 사실만 취사선택해 흘리는 관행은 그간 숱한 논란을 불렀다. 2017년 대선 당시의 댓글 조작 여부를 수사하던 드루킹 특검이 곁가지인 고(故) 노회찬 정의당 의원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을 흘린 결과는 참담했다. 형법 126조는 무죄 추정의 원칙과 인권 보호 등을 의식해 피의사실 공표를 엄히 처벌토록 하고 있지만, 2000년 이후 기소된 사례는 전무하다. 대법원 판례는 ‘알 권리’ 차원이더라도 의심의 여지가 없는 확증을 전제한 경우로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당일 밤늦게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사문서 위조 혐의로 전격 기소되자 급기야 ‘논두렁 시계 시즌2’라는 비판이 나왔다. 검찰이 야당과 언론에 수사 내용을 잇따라 흘리고, 본질이 아닌 문제로 망신과 모욕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가족을 볼모로 조 후보자를 압박하는 데 대한 반발 심리에다 ‘제2의 노무현’이 되지 않게 지켜주겠다는 일종의 부채의식까지 보태져 있다. ‘조국 사태’가 ‘검찰 사태’로 전환되는 듯하다.
양정대 논설위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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