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를 덮쳤던 초강력 태풍 ‘링링’이 7일 오후 2시30분을 기준으로 북한 황해도로 상륙하면서 큰 고비는 넘겼다. 그러나 최대 순간 풍속이 초속 54.4m에 달하는 강풍에 전국적으로 3명(오후 6시 기준)이 숨지는 등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나무와 전신주가 쓰러지고 수확을 앞둔 농작물이 피해를 입는 등 재산 피해도 잇따랐다.
기상청에 따르면 태풍 링링은 이날 오후 2시 30분 현재 북한 황해도 해주 남서쪽 약 30㎞ 부근 해안에 상륙해 오후 3시에는 해주 서쪽 약 20㎞ 부근 육상에서 시속 49㎞으로 북진 중이다. 이날 최대 순간 풍속은 전남 신안군 흑산도에서 54.4m(시속 195.8㎞)를 기록하며 1959년부터 우리나라를 거쳐 간 역대 태풍의 순간 풍속 가운데 5위에 올랐다. 역대 태풍 중 순간 풍속 값이 가장 높았던 것은 2003년 ‘매미’로 초속 60.0m(시속 216㎞)를 기록했다. 2위는 2000년 ‘쁘라삐룬’으로 초속 58.3m(시속 209.9㎞), 3위는 2002년 '루사' 초속 56.7m(시속 204.1㎞), 4위는 2016년 '차바' 초속 56.5m(시속 203.4㎞)다.
수도권에도 강한 바람이 불며 인천 옹진군 자월면 서수도에서는 이날 최대 순간 풍속이 초속 40.1m(시속 144.4㎞)로 관측됐고, 인천 중구 을왕동에서도 초속 38.5m(시속 139㎞)의 강풍이 불었다. 상대적으로 태풍 중심에서 거리가 멀지만 서울에서도 강풍이 불고 있다. 서울 강서구 공항동 김포공항에선 최대 순간 풍속 초속 34m(시속 122.4㎞)의 강풍이 관측됐고 마포구 망원동에서는 초속 30.1m(시속 108.4㎞)의 강풍이 불었다. 구로ㆍ강서ㆍ강동ㆍ중랑ㆍ성북ㆍ강북ㆍ성동구 등에서도 순간 최대 풍속 초속 20m 이상의 강한 바람이 분 것으로 확인됐다.
강풍이 서쪽 지방을 중심으로 강타하면서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가 잇따랐다. 충청남도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 30분쯤 충남 보령에서 최모(74)씨가 강풍에 휩쓸려 숨졌다. 최씨는 트랙터 보관 창고가 강풍에 날아가는 것을 수습하다 변을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오후 2시44분쯤에는 인천시 중구 인하대병원 후문 주차장 담벼락이 무너졌다. 이 사고로 시내버스 운전기사 A(38)씨가 무너진 담벼락에 깔려 사망했다. 경찰은 A씨가 주차장 내 버스 정류장에 시내버스를 정차한 뒤 내리다가 사고를 당한 것으로 보고 정확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오전 10시 28분쯤에는 보령시 성주면에서는 철골 구조물이 바람에 무너지면서 김모(67)씨 집을 덮쳤다. 이 사고로 김씨 부부가 다쳐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
이번 태풍은 비보다 바람 피해가 컸다. 서울 중부공원녹지사업소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40분쯤 중구 서울시청 남산별관 진입로의 직경 30㎝에 높이 15m 크기 아까시나무가 강풍에 쓰러졌다. 나무가 주차된 승용차를 덮치면서 차량 앞 유리가 파손됐지만 다친 사람은 없었다. 녹지사업소는 쓰러진 나무를 톱으로 잘라 오전 10시 40분쯤 정리했다. 낮 12시 50분쯤에는 도봉구 창동의 한 아파트단지에서 가로수가 주차된 차량을 덮쳤으나 인명 피해는 없었다. 소방당국은 쓰러진 나무를 잘라냈다. 오전 11시쯤 서울 도봉구에 있는 문창교회의 첨탑이 떨어져 나가 추락하는 사고도 있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으며 주차돼 있던 차량 한 대가 파손됐다.
건물 창문이 깨지는 사고도 이어졌다. 오전 11시 50분쯤 마포구 신촌로 한 건물 1층 매장 통유리창이 파손됐지만 인명 피해는 없었다. 낮 12시 30분쯤엔 송파구 문정동 한 상가건물 3층 유리창에 금이 가 소방당국이 출동했다.
정전으로 인한 피해도 속출했다. 중앙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제주와 광주·전남 등에서 어제부터 모두 약 3만1,700가구에서 정전이 발생했다. 제주 구좌읍에서는 정전으로 넙치 2만2,000마리가 질식사하기도 했다. 오전 11시 14분쯤에는 서울 금천구의 빌라 단지 일대에 정전이 발생해 1,800여 가구에 전기 공급이 끊겼다 5분 만에 복구됐다. 낮 12시 8분쯤에는 공항철도 계양역∼디지털미디어시티역 상행선 구간 선로의 전기 공급이 끊겨 열차 운행이 25∼30분가량 지연됐다.
대형 크레인이 높은 파도에 떠밀리고 방파제 옹벽이 유실되는 등 해상 시설물 피해도 발생했다. 오전 6시 13분쯤 전남 목포시 북항으로 피항한 3,000톤급 해상크레인 A호가 강한 바람으로 정박용 밧줄이 끊어지면서 해상으로 740m가량 떠밀렸다. 신안군 흑산면 가거도에서는 가거도항 옹벽 50m가량이 유실됐다. 제주 서귀포시 강정항에서는 95m짜리 무빙워크 2개가 침수됐으며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항 동방파제 안전난간 500m가 파손됐다.
태풍 ‘링링’이 이날 오후 들어 북한으로 넘어가긴 했지만, 풍속이 초속 15m 이상인 강풍 반경이 300㎞에 이르는 데다 중심 부분 최대 풍속이 초속 35m(시속 126㎞)에 달하고 중형급의 크기와 강도 ‘강’의 상태를 계속 유지하고 있어 안심하기엔 이르다. 기상청은 “중부 지방 대부분은 여전히 태풍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어 있다”며 “7일 밤까지도 강풍이 부는 곳이 많으니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링링은 7일 오후 6시쯤 평양 북동쪽 약 70㎞ 부근 육상을 지나 일요일인 8일 자정 무렵에는 국경을 넘어 중국에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태풍은 이날 오전 6시쯤 크기가 소형으로 작아지고 강도도 ‘중’으로 약화하면서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북서쪽 240㎞ 부근 육상을 통과한 뒤 정오 무렵에는 열대저압부로 약화해 소멸할 전망이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안하늘 기자 ahn70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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