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 2월 하노이 북ㆍ미 정상회담 이후에도 핵ㆍ미사일 프로그램 개선 작업을 멈추지 않고 있으며 선박 간 불법 환적을 통한 제재 회피 행위도 지속하고 있다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위원회가 지적했다. 북한은 특히 전 세계 금융기관과 가상화폐거래소 등에 대한 사이버 해킹으로 20억달러(약 2조4,000억원)를 탈취한 것으로 추정돼 북한의 새로운 외화벌이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엔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는 5일(현지시간) 공개한 전문가 패널 반기(2019년 2월 2일~8월 2일) 보고서에서 “핵실험 중단과 풍계리 실험장 폐쇄에도 불구하고 핵 프로그램이 계속 가동되고 있다”라며 “한 회원국은 영변의 우라늄 농축시설이 계속 가동되고 있다고 평가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영변 핵시설에서 경수로 건설작업이 지속되고 있으며 구룡강 준설도 꾸준히 관찰됐다고 덧붙였다. 방사화학실험실에서도 가끔 활동이 포착됐는데 보고서는 유지보수를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평산의 우라늄 정련 시설 및 채굴장도 여전히 가동되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판단했다. 보고서는 다만 이 기간 영변 핵시설의 5MW(메가와트) 원자로의 가동 징후가 확인된 것은 없으며 많은 회원국이 5MW 원자로에서 사용한 핵연료봉이 재처리 시설로 옮겨졌는지에 대해 판단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아울러 5월과 7월에 잇따라 이뤄진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를 두고 “탄도미사일 구성품을 숙달하는 능력과 함께 탄도미사일 방어체계(MD)를 뚫을 능력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밝혔다. 북한이 미사일 핵심 기술을 사실상 모두 확보했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북한이 제재에도 불구하고 전체 미사일 생산 체인을 토착화해 왔으며 시스템 통합과 시너지 등을 통해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에서 이뤄진 진전이 전체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에 도움을 준다고 보고서는 평가했다. 또 함흥 미사일 공장 등에서 고체연료 연구개발(R&D)과 생산이 활발해 분명한 진전이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익명의 회원국은 북한의 현재 목표가 고체연료 대륙 간 탄도미사일(ICBM)이라고 전했다. 고체연료 ICBM은 빠른 발사가 가능해 미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북한의 무기이다. 이밖에 분산ㆍ은폐ㆍ지하화된 탄도미사일 인프라시설을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있으며 보관 및 지원시설도 끊임없이 건설하고 있다고 대북제재위는 설명했다.
이란 시리아를 포함해 제3세계 국가와의 군사 협력도 여전한 것으로 지적됐다. 시리아에 북한 미사일 관련 기술자들이 체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금수품 수출을 담당하는 북한 정찰총국 요원으로 최소 3명이 이란 테헤란 주재 북한 대사관 소속으로 있다고 보고서는 전했다.
이번 보고서는 특히 가상화폐 거래소 등에 대한 사이버 해킹에도 초점을 맞췄다. 대북 제재위가 최소 35건의 북한 해킹을 조사하고 있는데, 탈취 금액이 20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북한의 해킹 공격을 받은 17개국 중 한국의 피해건수가 10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가상화폐 교환소인 빗썸의 경우 네 차례 공격을 받아 6,000여만달러가 탈취됐다. 보고서는 “향후 추가적인 대북제재가 이뤄지면 사이버 공격의 심각성에 초점을 맞출 것을 권고한다”며 “가상화폐 거래소를 비롯한 비은행기관까지 아울러야 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북한은 선박간 불법 환적을 통해 정제유와 석탄 등 밀거래를 지속한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은 위성 추적을 피하기 위해 중소형 선박인 피더선(Feeder)을 불법 환적에 동원했고 기항 통지(Port call)를 피하려고 바지선을 사용했다. 아울러 심야 환적, 선박자동장치 미작동, 변칙항로 등 다양한 제재 회피 수법이 동원됐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이런 방식으로 정제유의 경우 4월 말에 연간 50만 배럴의 수입한도를 초과했고 수출 금지품목인 석탄은 4월까지 최소 127차례에 걸쳐 93만톤(약 9,300만달러어치)이 수출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밖에 대북제재 대상인 만수대 창작사 그림을 구매해 한국에 반입하려다 공항에서 적발된 사건도 이번 보고서에 담겼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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