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아프가니스탄 무장반군 탈레반 사이의 평화협정이 초안 합의 일주일 만에 흔들리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협상안 서명을 거부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미 행정부 내에서조차 대(對)아프간 정책에 대한 의견 정리가 안 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그뿐 아니라 미 의회와 전현직 관료들도 우려를 내비치고 있고, 그간 미국에 협력해 온 아프간 정부 역시 불만을 표해 최종적인 협정 타결이 가능할지 미지수다.
미 시사주간지 타임은 5일(현지시간) 폼페이오 장관이 평화협정 초안에 서명을 거부했다고 미국과 아프간, 유럽 관료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지난 2일 미국과 탈레반이 “원칙적으로” 합의한 초안은 미국이 서명 후 135일 이내로 아프간에 주둔 중인 1만 4,000명 규모 병력을 8,600명까지 감축하고 5개 기지를 폐쇄하는 대신, 탈레반은 향후 알카에다 등 테러단체가 미국을 공격하지 못하게 방지한다는 내용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미국이 18년간 끌어온 아프간전을 끝내겠다고 공언해 왔고, 이 같은 방침 아래 잘메이 할릴자드 아프간 평화협상 특사가 탈레반과 9차례에 걸쳐 협상해왔다. 그러나 타임은 “전문가들은 협정 초안이 △미국의 대테러 세력의 지속적인 주둔 △친미 아프간 정부의 생존 △영구적인 휴전 모두를 보장하지 못한다고 본다”고 전했다. 실제 초안 발표 이후에도 수도 카불에서는 탈레반 소행의 차량 폭탄 테러가 2일과 5일 발생해 미군 2명을 포함한 26명이 목숨을 잃었다.
미 당국과 정치권에서는 섣부른 평화협정 타결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끊이지를 않고 있다. 일단 철군이 시작되면 되돌리기 어려운 데다, 현지 정세가 다시 불안해질 위험성이 크다는 것이다. 지난달 28일 조지프 던퍼드 미 합참의장은 “아직 아프간 군대가 연합군 도움 없이 나라를 보호할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다”며 “전면적 철수를 말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밝혔다.
미국의 아프간 파병의 시발점이 된 9ㆍ11테러 이후 아프간 미 대사를 지낸 9명의 전직 외교관들도 3일 공개성명을 통해 “성급한 미군 철수는 아프간 내전을 다시 본격화하는 단초를 제공할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절친한 친구인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조차 “미군 철수가 국가 안보를 위태롭게 하지 않는다는 걸 정부가 입증하도록 하는 법안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미 NBC 방송은 5일 보도했다.
이런 맥락에서 폼페이오 장관의 서명 거부도 미 행정부 내 아프간 철군을 둔 ‘불협화음’을 보여주는 징후란 해석이 나온다. 앞서 CNN 등은 지난달 16일 트럼프 대통령이 평화협정 사안을 논의하기 위해 참모들을 뉴저지주로 소집했는데, 이 자리에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제외됐다가 뒤늦게 포함됐다고 전했다. 현 정부의 대표적 매파인 볼턴 보좌관은 탈레반이 약속을 지킬지 믿을 수 없다며 평화협정에 반대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아프간 정부도 불안감을 넘어 불만이 역력한 모습이다. NBC는 5일 외교관과 2명의 전직 미 관료를 인용해 최근 할릴자드 특사가 아프간 정부에 평화협정 초안을 설명한 자리에서, 아프간 정부 측이 “나쁜 반응”을 보였으며 “격렬한 언쟁이 오갔다”고 전했다. 해당 초안에 △미군의 구체적인 철군 절차 △향후 아프간 정부의 통치 방식 △철군 후 전력 공백에 대한 보완 방안 등의 구체적 내용이 빠져있는 탓이다. 이런 가운데 할릴자드 특사는 탈레반과의 추가 논의를 위해 5일 카타르를 찾았다고 NBC는 덧붙였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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